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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음악을 찾아서

산으로 강으로 2005. 12. 26. 14:36
잃어버린 음악을 찾아서.

부모님이나 자식을 잃어버리고 찾는 사람을 많이 봤다. 그리고 스승과 친구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강아지를 잃어버려 강아지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봤다. 나도 간절히 찾는 그 무엇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었으므로 나만이 소유 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뭇가지에 싹이 움트고 꽃망울이 하나 둘 아름다움을 펼쳐나가던 어느 봄날, 건전지 네 개에 의지해 작동하는 라디오에서 소년의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라디오 프로그램 앞에 나오는 배경 음악으로 끝까지 들을 수는 없었다.

음악이 어느 정도 흐르면 프로그램 진행자는 여지없이 음악을 잘랐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 약간의 음악이 흐르다 사라진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중간까지도 들을 수도 있었다. 프로그램 내용은 관심이 없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처음에 진행 할 때와 끝날 때, 그 음악에만 관심을 가졌으므로 그 프로그램 제목이 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음악이라곤 학교에서 배우는 토끼가 등장하는 옹달샘과 몇 가지 동요밖에 몰랐던 소년에게 그 음악은 가슴 설레이는 꿈을 안겨다준 가벼운 감동이었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의 멜로디는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장단에 맞춰 꿈 많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아 따스한 봄날 아지랑이와 함께 하늘을 날기도 했다.

봄과 함께 찾아온 뻐꾸기 소리는 점점 멀어져가고, 매미의 시끄러운 소리로 자리 메꿈을 하던 어느 여름날, 그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은 뻐꾸기 소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전축이나 카세트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기에 마음속으로 그 음악을 간직한 뿐, 과거 속의 추억의 음악으로 서서히 멀어져야 했다.

어쩌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그 음악이 들려오면 약간의 현기증과 전율을 느끼며 들어야 했고, 그 음악의 제목이라도 알려고 신경은 곤두세워 봤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 하였다. 언젠가 내가 커서 전축을 사게 되면 이 음악을 찾아 평생을 듣고 살리라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음악만 좋아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옛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엔 스피커가 있었다. 각 가정 집마다 스피커를 달아주고 지금의 tv 공청 방송처럼 스피커에 선을 연결해 매달 시청료가 아닌, 청취료를 내고 그 스피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기억이다. 아침이 되고 등교할 때가 되면, 스피커에서 경쾌한 휘파람음악 소리가 어린 나를 매료 시켰는데, 그 음악이 성인이 다 되어서 콰이강의 다리 영화 주제가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라디오 연속극 주제곡인 이미자씨의 섬 마을 선생님 노래는 왜 그렇게 구성지고 감미로웠는지, 그 노래가 배우고 싶어 연속극이 나올 때가 되면 미리 연필과 공책을 대기하고 있다가 가사를 따라 적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응가 하다가도 그 노래만 나오면 중간에 자르고 나와 듣기도 했고,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그 노래만 나오면 스피커 앞으로 달려갔다.

세월이 흘러도 콰이강의 다리나 섬 마을 선생님은 노래는 제목을 알고 있기에 레코드판이나 카세트 테이프로 얼마든지 구입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봄날과 함께 사라진 그 음악은 제목을 몰라 찾을 길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그 음악을 찾기 위해 쓸데없는 카세트 테이프와 레코드판을 수도 없이 구입을 했다. 그 아름다운 음악은 3/4박자로 봄에 관련된 클래식 음악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클래식에서 봄에 관한 음악이 있으면 그 음악이 있을 것이란 기대의 흥분된 마음에 듣지도 않고 무조건 사고 봤다.

그러나, 그 수 없이 많이 구입한 레코드판과 카세트 테이프엔 불행하게도 그 음악은 없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생김새뿐인데 생김새를 말로 설명해서 찾을 수 있을까? 찾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내가 이런 사람이 당신을 찾으니 나를 찾아주소, 하고 광고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도 못 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머리를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그렇다! 생김새를 말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그 음악을 들려주면 그 음악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좀 망설여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숙기가 없어 대중 앞에 노래를 부르지 못 한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노래를 설명할까.

그래도 그 음악을 찾을 수 있다면 한번의 수모는 각오 해야했다. 음악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충주에서 제일 큰 레코드 가게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제목도 모르고 음의 멜로디만 아는데, 부르는 음을 듣고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레코드 가게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멜로디를 들려 달라고 했다. 나는 씩씩하게 멜로디를 설명했다. "따다단딴! 따다단따, 따다단 따다~!" 사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숙기가 없는 나는 너무 부끄러워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하고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불러줬다. "따다단따, 따다단따, 따다단 따다~!"

사장님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더니 "잘 모르겠는데요?" 순간,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고 몸서리를 치며 재빠르게 그 가게를 나와 버렸다. "흣~~ ! 창피해~~! 흣~~! 창피해~~!" 모른다면 모른다고 진작에 얘기를 할 것이지, 두 번씩이나 시켜보고 모르겠다니..! "흣~! 창피해~!"

그 사건이 있은 후, 잠시 그 음악 찾기를 포기했다 창피하기도 했고, 뭐가 그리 대단한 음악인데 밥 먹고사는 일도 아닌데 창피를 무릅쓰고 찾으려 애를 쓸까? 좋은 음악은 세상에 많이 널리고 널려있다. 지금 찾고 있는 음악도 찾고 나면 아주 시시한 음악일 수도 있고,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실증을 낼지도 모른다. 창피를 당하고 난 후, 그 음악의 그리움 감정을 갖지 않으려 애쓰고 찾지도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음악의 그리움과 열정은 더해가기만 했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설명할 방법은 없을까...? "아~! 있다!" 기타로 연주하면 된다. 기타로 그 음악을 설명하면 가능 할 것이다. 당시에 나의 기타실력은 수준 급에 속해 있었다.

로망스와 아람브라 궁전에 추억은 자유 자재로 연주를 했고, 클래식 기타의 대가 스페인의 세고비아도 힘들에 연주했던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도 마스터 단계에 있었고, 주의에 제자도 몇 명 두고 있었다. 어째든 주위에서는 그래도 알아주는 사이비 클래식 기타 연주가였다. 그런 나에게 그 음악의 첫 구절, 아는 부분만 기타 곡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 이였다.

기타 음악으로 편곡을 하고, 기타 연주를 어느 정도 습득한 후, 나는 기타를 들고 레코드 가게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려 줬을 때는 레코드 가게주인마다 음은 참 좋지만 무슨 음악인 줄 모르겠다고 했다, 레코드 가게는 다 둘러 봤지만, 충주 바닥에선 그 음악을 아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이대로 포기를 해야 하나? 하지만 그동안 편곡하고 기타 연주로 습득한 시간이 아까웠다. 마지막으로 음악에 박식한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인 아나운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렵게 만난 아나운서에게 기타로 음악을 들려주고 제목을 알려고 했으나, 아나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은 미리 준비한 음악으로 공부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박식해 보일 뿐, 자신도 잘 모르고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라고 설명하고, 레코드 가게에 알아보는 것이 더 빠르다고 했다.

결국 그 음악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음악을 찾는데는 그래도 레코드 가게가 더 빠르다는 아나운서 말이 자꾸 내 귀에 맴돌았다. 차라리 내가 레코드 가계 주인이 되면 어떨까? 돈도 벌고 취미도 살릴 수 있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충주 레코드 가게 사장님들은 음악도 잘 모르면서 운영하는 듯 보였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최소한의 상식은 있고, 그 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내가 레코드 가게를 하면 된다. 그렇게 꿈을 꾸고 있던 몇 년 후,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학수 고대 하던 레코드 가게는 이루어졌다. 레코드 가게 주인이 되고 처음 한 일은 그 음악을 찾는 것이다. 클래식 레코드판이 들어오면 라이센스라 해도 뜯어서 듣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레코드 가게를 하려면 모든 대상을 대중 음악에 맞춰서 운영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내 수준에 맞추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새 레코드판은 중고로 만들어 놓고, 운영이 잘될 리 없었다. 취미로 시작한 사업은 취미로 끝을 맺어야 했다. 결국 그 음악은 찾지도 못 한 채, 낙엽이 지는 어느 쓸쓸한 가을날 손해만 보고 그 가계는 접어야 했다.

결국 사업에는 손은 떼고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음악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그 음악에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 하고, 라디오 FM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고, 혹시 그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음악이 나오기 전 미리 녹음을 준비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10년 후, 직장에서 퇴직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조카 집에 들러 눈에 확 띠는 그 무엇을 발견했다. 그 것은 클래식 레코드판이 이었는데 큰 박스로 하나 가득 있는데 어림잡아 100장은 넘는 듯 보였다.

내가 그 클래식레코드 판에 관심을 보이자, 조카며느리는 클래식음악의 모든 것은 여기에 다 있을 것이라고 자랑을 했다. 나는 유난히 눈이 반짝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이곳 중에는 반드시 그 음악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레코드판을 빌려다 모두 들어 보리라.

그리고 기회는 왔다. 어느 일요일,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집을 비우고 애들만 있는데 삼촌이 와서 집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 줬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 음악을 들었다. 듣는 내용은 옛날 레코드 가게에서 했던 행동과 같았다. 처음만 들어보고 아니면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데 아침 9시부터 점심 시간이 지나가는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애들은 깨부수고 놀든 말든 관심 없었고, 전축 앞에 앉은 그 자세로 저녁 4시까지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은 실망이었다. 결국은 거기에도 없었다. "역시나~! 레코드 가게를 할 때도 못 찾았는데 여기서 어찌 찾을 수 있을까? 다시는 그 음악은 찾지 않으리라!"

무정한 세월은 다시 흐르고, 그 음악을 잊고 지낼 즈음, 컴퓨터를 알게 되었다. 컴퓨터에는 음악과 영화 오락게임 등등.. 모든 정보를 담고 있었다. 바둑을 두고 싶으면 바둑을 두고, 신문을 보고 싶으면 신문도 보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도 보고,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음악도 듣고, 정말 너무도 고마운 친구였다.

그래도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본능 적으로 다시는 찾지 않겠다던 그 음악을 여기서 다시 찾기 시작했다. 벅스뮤직, 아이뮤페, 소리바다 등등.. 음악 사이트에서 그 음악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이태리 음악 칸초네, 그리고 프랑스 음악 샹송을 모조리 다운받아 하나 하나 확인하면 듣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찾고 싶어도 못 찾았던 그 음악, 그토록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던 그 음악, 찾다가 못 찾아 포기했던 그 음악, 내 가슴속에 한이 맺혔던 그 음악이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방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분명 내 컴퓨터에서, 30여 년 동안 그 긴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내 가슴을 적시며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혹, 내가 그 음악에 미쳐 환청이 들리는 것은 아닌지, 또 꿈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사실이었다. 확실히 예전에 들었던 그 음악이 멜로디 하나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가 그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 잠시나마 황홀경에 빠질 수 있었다.

클래식으로 알았던 그 음악은 클래식이 아니었다. 프랑스 대중가요(샹송)에 그 유명한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 한 것이었다. 폴 모리 악단의 테이프나 레코드는 모두 사 들었는데 왜, 거기에는 이 음악이 없었을까? 샹송이나 칸초네 음악도 안 들은 음악은 없을 정도였는데 왜 거기에는 이 음악이 없었을까?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음악을 30여 년 만에 찾았다니.. "허무~!"

200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