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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리고 혼

산으로 강으로 2005. 12. 26. 14:45
생명 과 혼

작은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다. 손가락으로 쿡, 눌러본다. 죽겠다고 발버둥친다. 무척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한 번 더 눌러본다. 그래도 생명은 끊어지지 않고 꿈틀거린다. 너무 잔인한 느낌이 든다. 빨리 고통에서 해방시켜야지.. 바닥에 싹싹 비벼 개미의 흔적조차 지워버린다.

개미는 나와 아무 감정도 없다. 단지 내 발등 위로 기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죽임을 당했다. 발등위로 기어갔다는 이유가 죽임을 당할 만큼 큰 죄를 졌을까? 그렇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개미에겐 아주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한 생명체가 이렇게 죽었다. 그리고, 그 아무도 그 생명체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 죽은 개미도, 죽인 자도 기억해 줄 아무런 이유도 없다.

모기가 왼손 위에 앉아 식사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며 폼을 잡는다. 순간, 오른손이 모기를 향해 '탁..!' 맛있는 식사시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죽음의 시간 이였다. 왼손 등을 툭툭 털어 버린다.

또, 한 생명체가 죽었다. 그리고, 그 생명체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 기억한다면, 아주 잘 죽였다. 귀찮은 모기 세상에서 멸종이 됐으면.. 하지만 한 생명체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산토끼를 잡으려고 깊은 산골 토끼 다니는 길목에 올가미를 놓았다. 새벽에 토끼가 깡충깡충 옹달샘에 물먹으러 가다가 올가미에 걸렸다. 올가미에게 걸린 토끼를 보고 얼른 달려가 뒷다리를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가격해서 죽인다. 그리고 죽은 토끼를 들고 신이 나서 돌아간다.

산토끼가 죽었다. 쪼끔 불쌍하다. 귀여운 산토끼가 무슨 죄가 있어서,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깊은 산 속 옹달샘에 물 좀 먹는다고 죽을죄가 되나? 어째든 귀여운 산토끼가 죽었으니 쬐끔 불쌍하다. 또 한 생명체가 사라졌다.

돼지를 잡으려고 여러 사람이 돼지의 네발을 묶었다. 뜨거운 물도 끓이고, 창칼도 날카롭게 갈고, 돼지를 개울로 가져가 목을 딴다.

돼지는 그야말로 돼지 목 따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잔인하다. 목을 향한 칼질은 계속되고, 끝내는 숨통을 끊어 버린다.

소리를 잃은 돼지 목에선 울컥울컥 피가 솟아 내린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양동이로 피를 받는다. 그리고 돼지는 힘을 점점 잃어가고 죽음을 맞는다.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어차피 사람의 식용으로 죽어야 할 목숨이었다. 또 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개미의 작은 생명, 모기의 귀찮은 생명, 토끼의 귀여운 생명. 사람들 식용으로 키워진 돼지의 생명, 사람들이 보기엔 하찮은 생명체지만, 자신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끝이다. 동물이 죽은 뒤에는 혼도 없고 천당 지옥도 없다. 그냥 끝이다.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한 가족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다 배고프면 밥 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추운 겨울이 되면 옷 입히고, 아프면 병원도 데려가 치료 해주고, 그렇게 평생을 호강을 하며 살다가 죽었다. 특별한 강아지에겐 무덤도 있고 무덤 앞에는 십자가도 있다.

이 강아지의 죽음은 특별한 것일까? 이 강아지는 혼도 있고 천당 지옥도 있을까?

물론 특별 할 리 없다. 이 강아지도 혼도 없고 천당 지옥도 없다. 그냥 사라진 것이다.

인간도 죽는다. 운명이 다해 죽기도 하고, 교통사고, 또는 지병, 그리고 호랑이나 늑대 곰 등등.. 다른 생명체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사후 세계가 있다. 인간은 죽으면 귀신이 되어 살아있는 사람 간섭도 하고, 구천을 떠돌기도 하고, 혼이 있어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가고, 지옥도 가고, 연옥이라는 곳도 있고, 윤회도 하고 어째든 죽음이 끝이 아니다.

인간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많지만, 동물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 사람 귀신은 은혜를 베풀기도 하고, 원수를 갚기도 하지만, 동물 귀신은 은혜도 없고 원수도 없다. 죽음은 그대로 끝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만물의 영장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죽어서도 만물의 영장일까? 죽음 후에는 다른 생명체와 같이 육체를 벗어나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면 똑같아지는 것 아닌가?

죽은 뒤에 혼이 있다면 왜 인간에게만 혼이 있을까? 왜 다른 생명체에겐 왜, 없을까? 물론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체(동물) 에게는 불성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한다. 동물도 인간도 될 수 있고 다시 동물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윤회를 하는지 뭐를 하는지 모른다. 사후 세계는 모른다. 아마도 죽음 자체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동물이라는 생명체만 윤회에 포함되고, 또 다른 생명체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은 윤회에 포함되지 않았다. 식물이란 생명체는 생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식물은 그렇지 않다.

가을에 산에 오르다 보면 씨앗들이 옷에 많이 붙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숲에서 빠져나와 모두 털어 벌인다. 식물은 자신의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해 인간이나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식물들도 세상에는 땅에 뿌리내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나 동물을 이용해서 자신의 종족을 멀리 퍼트리고 있다. 어찌 생각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식물도 생각한다. 꽃도 피우고 번식도 할 줄 안다. 만지면 오그라드는 풀도 있고, 밤이 되면 꽃을 닫고 해가 뜨면 꽃을 피운다. 반대로 밤이면 꽃을 피우고 낮에는 꽃을 닫는 꽃도 있다.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죽는다. 분명 이들에게도 태어남이 있고 죽음도 있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어찌 인간에게만 부여되고. 이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후 세계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인간의 특별한 기득권일까? 인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낸 만물의 영장의 오만함이 아닐까?

인간은 만물에 영장이라는 이유로 많은 생명체를 사랑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특별한 선택권이 있다.

인간은 이 특별한 선택권을 남용하다.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받고 난 뒤,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인간 외의 생명체를 함부로 하면 인간의 생명도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늦게나마 안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자연에 철학이 있고 자연에 도가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무소유로 돌아가라!

명예도 무상하고, 권력도 무상하고 재력도 무상하고, 삶도 무상하다. 웰빙의 붐을 타고, 자연으로 돌아가 시골에 별장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식이 건강식이라고 생식으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산에 자주 오르며 삼림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산에 들어가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도인이라고 자칭하며 마음을 비워 생사를 초월했다는 사람도 있다.

도를 깨우쳤다는 사람들은 말한다. 모두가 하나고 하나가 모두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무상 무념으로 욕심 없이 살다보면 마음이 비워지고 생사를 초월한다.

이것이 삶의 최선이라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벌써 도의 경지를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하나가 모두인지 모두가 하나인지. 너와 내가 둘인지 아닌지 모른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안 먹는다. 먹을 양식을 지나치게 많이 저축하는 일도 없다. 명예욕은 당연히 없다. 권력욕도 없다. 생과 사도 모른다. 신도 없고, 천당 지옥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생과 사를 초월했고 그냥 그렇게 자연과 적응하며 살다 죽어갈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제서 겨우 쪼끔 알고, 실천도 못 하면서 잘난 척 한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가 철학에선 인간보다 한 수 가 아닐까?

넓고 광대한 우주..

그 큰공간에 작은 태양계가 있다. 그 태양계 중 지구가 있다. 그 작은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나고, 수 없는 세월동안 수많은 생명체가 살았고 또 수많은 생명체가 죽어갔다.

그 수많은 생명이 태어날 때 인간도 태어났고 그 수많은 생명이 생을 마감할 때 인간도 생을 마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사장에 모래알 보다 더 많은 수 없는 생명체가 태어나고 또, 죽어가고 있다.

200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