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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쓰레기봉투

산으로 강으로 2005. 12. 26. 14:48

파란색 쓰레기봉투

너무 바쁘면 전화벨 소리가 너무 짜증난다. 밥 먹으라는 전화도 짜증나고, 아들이 전교 1등 했다는 소식도 짜증나고,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식도 모두가 다 짜증난다.

짜증이 나지만 전화는. 친절하게.. 상냥하게.. 이것 내가 전화 받는 기본 자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추석이 지나고 이튿날 부터 계속 바빠서 정신은 못 차렸다. 점심시간이 지났는지, 저녁이 돼서 어두워지는지, 어두워지면 하루가 가는지. 시간이라는 개념을 잃어버리고, 너무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바쁜 시간을 보낼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박수소리가 요란하고,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귀하께서 홍삼 액기스..~~에 당첨 되셨습니다.!!"

"탁!" (핸드폰 끊는 소리..)

바빠 정신 못 차리는데. 별 쓸데없는 전화를.. 그 사람들은 전화비도 아깝지 않나보다.

그러자 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이동수씨 핸드폰 맞지요?"

"예! 맞습니다. 왜 그러시죠?"

전화는 친절하게 받는 나의 기본태도 지만, 전에 쓸데없는 전화 때문인지 좀 퉁명스럽게 받았다.

"시청 환경과 에서 나왔는데요. 이동수씨가 쓰레기 무단투기로 적발 되셨습니다.!"

쓰레기 무단 투기..?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죄송!) 우리 집은 애들은 절대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집사람도 절대 쓰레기를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무단 투기를 하다니.. 그럴리 가 없어요. 잘 못 아셨습니다."

"아닌데요. 지정 쓰레기 봉지가 아닌 곳에서 이동수씨 에게 보낸 편지봉투가 다량 나왔어요. 시간 있으면 확인 좀 해주세요. 지금 집 앞에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따질 여유가 없다. 지금은 집에 없고, 너무 바빠서 있다가  전화를 하겠노라고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쓰레기 하면 나는 할 말 많은 사람이다. 우리 집 앞은 항상 쓰레기장 이였다. 대문 앞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어느 날부터 쓰레기가 하나 둘 모이더니, 우리 집 앞에 쓰레기 모이는 장소로 지정 돼 버렸다.

다른 사람들 집 앞은 모두 깨끗한데 우리 집 앞만 쓰레기가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우리 집 주위 사람들이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앞에 내다 버리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양심불량으로 살면서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 집 앞이 지저분한 것이 싫으면, 남도 싫다는 것을 왜 모를까?

어느 일요일 저녁. 차안에서 쓰레기 버리는 사람 감시에 들어갔다. 어둠이 내리고 인적이 뜸 할 때, 한 사람, 두 사람, 손에 흰 봉지 검은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와 우리 집 대문 앞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버리고 가는 사람마다 주위를 주고 쓰레기를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우리 집 앞은 깨끗해 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고 쓰레기에 무관심해졌을 때 또 쓰레기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예전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다시 지킬 수도 없고, 그냥 포기했다. 그냥 맘은 편히 먹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쓰레기가 분산되어 있으면 청소차도 가다 서다 해야하고, 환경미화원도 흩어진 쓰레기를 치우려면 힘들고, 한곳에 있으면 쉽게 끝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한번 양보하면 모든 사람이 편해진다.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참기로 했다.

일요일은 제외하고, 거의 매일 아침 쓰레기차가 다니기 때문에 아침이면 다시 깨끗해진다. 크게 불편한 점도 없다.

그런데 참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쓰레기 봉투에 뼈다귀를 집어넣어 고양이가 찢어 흩어지고, 냄새나고, 어떨 때는 지정 쓰레기 봉지가 아닌 곳에 버려, 집 앞에서 공무원과 다툼  하는 주부들을 한, 두번 목격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내가.. 아니면 우리 집에서 쓰레기 무단투기에 단속 됐다고...? 정말 말도 안 된다..!

일이 바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 일도 잘 되지 않았다. 잠시 짬을 내어 나는 핸드폰에 찍힌 번호로 단속 공무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파란 큰 봉지에 내게 전달되는 핸드폰영수증, 전화세영수증, 인터넷영수증.. 등등.. 증거는 충분하고 사진이 찍혀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만나자고 따져 보자고 했다.

파란 큰 봉지..?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파란 봉지라면 우리 집에서 나간 것이 맞다. 그 봉지는 대문 앞에 배관 자재와 종이를 담아 두었던 큰 비닐봉지였다.

"아뿔싸!"
그 봉지가 은행나무 옆에 버려진 채로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고발이 됐고..

그렇다면 이 봉지가 발도 없는데 왜, 밖으로 나갔을까..?

전에 일을 마치고 나면,  고물인 배관 자재나, 모터. 페보일러 등등.. 그래도 쓸만한 부품을 제외하고, 고물은 모두 작업 장소에 버리고 다녔다. 그러면 그 고물은 집 주인이 알아서 처리한다.

하지만, 요즘은 고물을 모두 집으로 가져온다. 누구를 주기 위함이었다.

요즘은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박스나 고물은 줍는 노인들은 많이 본다.

어느 날 집에서 대문을 열고, 자재 정비를 할 때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버릴 고물 있으면 달라고 했다. 그 때는 정리 할 때라 고물이 상당히 많았다. 페보일러 버너, 배관, 모터, 등등.. 모두 줬다.

할머니는 욕심이 많아 리어카에 다 실지도 못 하는데. 억지고 다 실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딴 사람 안 줄 테니까. 가져가시고 다시 오라고 했다.

힘겹지만, 즐겁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 이 모습을 보고 뒤따라가며 리어카를 밀어주는 애들이 모습.. 보기에 너무 좋았다.

이 때부터 나는 작업 후 고물은 반드시 집으로 가져 왔고, 할머니도 주고 이 사실을 안 할아버지도 주곤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 집을 지나칠 땐 꼭 우리 집 대문 안 고물을 확인하고 간다. 어느 정도 모였다고 생각하면 초인종은 누르지 않고 내가 나올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나가면 반갑게 인사하고, 고물을 가져간다.

그 문제의 파란 봉지는 과수원집에 일을 갔을 때 고물을 담아 온 것이다. 그곳에 고물을 모와 두고, 우체통에 편지나 영수증이 오면 볼 필요도 없이 이곳에 버렸다. 전기영수증, 전화영수증, 인터넷영수증. 등등.. 사실 은행에서 자동 이체가 되기 때문에 영수증은 필요 없었다. 은행에 빠져나간 표시가 다 기록이 되기 때문에 굳이 영수증을 보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파란 봉지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 할머니를 줬다. 그런데 할머니는 봉지의 쇠붙이만 가져가고, 파란 봉지는 은행나무 밑에 그냥 두고 간 것이다.

파란 봉지 속에는 편지 몇 통의 종이 밖에 없었다. 종이가 너무 적어서 그냥 버리고 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몰지각한 사람들이 잡 쓰레기를 규격 봉투도 아닌 곳에 담아 이곳에 버린 것이다.

나는 환경과 공무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뭐가 오해가 있다고 하고 시간이 한가할 때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내가 꼼짝없이 벌칙 금을 물어야 하나? 그러니 엔 너무 억울했다. 사실 내가 버린 것도 아닌데.. 우리 집에서 나갔다고 어떻게 내가 벌칙 금을 물어야 하나?

차를 몰고 가다 때 마침,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차를 도로 옆에 주차시키고 할머니에게 따지러 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내가 고물 주려고 하는 줄 착각하고, 반색을 하면 반겼다. 그렇지만 따질건 따져야지..

"할머니, 전 번에 왜 고물만 가져가고 파란 봉지는 안 가져갔어요..?"

"뭐라구..?"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잘 듣지를 못 했다. 나는 다시 큰소리로 얘기했다.

"할머니가 파란 봉지를 안 가져가서 나 쓰레기 단속반에게 걸렸어요."

큰 소리로 얘기하자 지나던 사람도 길을 멈추고 할머니와 나는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 너무나 할머니에게 따지듯 더 크게 얘기했다.

"가져가려면 종이도 다 가져 가야지..그 편지 봉투 때문에 내가 걸렸잖어..!!"

그러자 할머니도 무슨 뜻인 줄 알아들었다. 주머니를 뒤지더니 꼬깃꼬깃한 천 원을 한 장 내 놓으며..

"이거면 되나..?"

기가 막혀서..!!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불쌍히 사는 할머니를 협박해서 돈 뜯어낸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어이가 없어 웃고 있으니까. 할머니는 천 원 한 장을 더 꺼내 는 것이었다.

"이것도 안되나..?"

떨어진 모자에 흰머리, 때묻은 옷.. 검게 그을린 할머니의 표정에선 다시는 고물은 얻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2천 원의 아까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 됐구요. 다음에는 쇠 덩어리만 가져가시지 말 구요 종이도 다 가져가세요. 그리고 쇠 덩어리만 필요하면 봉지는 대문 안에 넣어두시고 가세요."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지만,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왔다. 할머니에게 떠밀 수도 없고, 내가 뒤집어쓰자니, 억울하고..

벌칙 금은 최하 10만원으로 알고 있다. 10만이면 캔터키후라이드 치킨이 열 마리에다.. 소주가 몇 병인데..??

한참을 고민하다 답이 나왔다. 그래, 일단 할머니에게 미루자. 그래서 사실이 밝혀지고, 공무원이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벌칙 금을 부과하려고 하면, 그 때는 내가 뒤집어쓰면 되는 것이다.

공무원도 양심이 있지 설마, 고물이나 줍고, 혼자 사는 생활보호대상자 할머니에게 벌칙 금을 부과 할 수 없을 것이다.

결심을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얘기했다, 내가 버린 것이 아니라. 고물 줍는 할머니가 버린 것이라고. 그러자 공무원은 우리 집에서 쓰레기가 나갔으면 버린 사람의 책임이 아니고, 우리 집 책임이란다. 그러면서 저녁 7시에 찾아오겠다고 하며 만나서 따지자고 했다.

나는 예를 들어 물었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나와서 겉 봉지를 길에 버렸습니다. 그럼 그 벌칙 금을 슈퍼주인이 물어야 되나요..?"

잠시 말이 없었다.

"좋아요 따져 봅시다..일곱시에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오세요..일곱시에..만납시다!!"

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