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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는 사내

산으로 강으로 2005. 12. 26. 15:19
재수 없는 사내

파란 수평선 위에 통통배 하나,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 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즐거워 아우성 치는 피서객들..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피서지를 동해바다로 택한 것을 후회도 했지만 도착하고 나니 그래도 바다를 선택하기를 잘 했다며 모든 피로가 가시는 듯 했다.

"그 동안 있었던 나쁜 기억은 모두 바닷물 속에 던져 버리고 가야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사내는 욕심 없이 순수하게 사는 것이 인생 목표라고 했다.

삶이란, 구름 한 점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과 같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부질없는 인생, 얻을것도 없고 버릴것도 없다.

욕심 없이 순수하게 살다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가리라.. 권위도 필요 없고 돈도 쓸 만큼만 있으면 되고 명예도 필요 없다고 했다.

결혼 대상자를 고를 때도 순수하고 착한 전문직 종사자 약사를 원했다.

약사와 결혼해 아버지께 약국 가게 차려달라고 부탁해서 자신은 아침에 샤터문 열어주고 저녁이면 닫아주고 자신은 낚시나 하고 등산이나 하면서 순수하게 살다 가리라고 꿈을 키워 왔다.

그러나 약사 출신의 여인들은 사람 보는 눈이 너무 낮아 순수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약사는 스스로 포기를 하고 약사와 비슷한 전문직 종사자 미용사와 결혼하기로 했다.

미용사와 결혼하고 처음엔 계획대로 잘 이루워 졌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일이 꼬이더니 자신이 미용사가 되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하는 순수 주부로 전환되었다.

이때부터 순수한 사내는 스스로 재수 없는 사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평생을 땅만 보도 다녔는데 100원 짜리 동전 한 닢 못 주었고, 주택복권으로 시작해서 긁는 복권, 로또 복권까지 수없이 도전을 했지만, 당첨 됐다는 사람은 많은데 자신은 한번도 되지 않는다고 하늘도 원망하고, 땅도 원망하고, 동양 신 서양 신 고무신 모두 싸잡아 원망했다.

산삼을 캐서 횡재 한번 하려고 돼지머리 놓고 막걸리 따라서 산신령님께 고사도 지냈는데, 고사 안 지낸 사람은 산삼을 캐고 고사 지낸 자신은 산삼커녕 도라지도 제대로 못 캤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원래는 피서지를 산 좋고 물 좋은 계곡으로 가려고 했지만, 산신령이 뵈기 싫어서 바다로 선택 했다.

바닷가에 주저앉아 넋없이 바다를 주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바다 멀리 여인 하나가 고무 튜브를 놓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재수 없는 사내는 급히 옷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바다로 뛰어 들었다.

여인을 구하러 가는 짧은 시간동안 긴 생각을 했다.

저 여인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쫙 빠진 부자 집 맏딸일 것이다. 내가 구해주고 나면 여인은 내가 생명에 은인이라고 하며, 어자피 죽었던 목숨인데 남은 여생을 은인을 위해 살게 해 달라면 애원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부자 집 사위가 되고 평생을 순수하게 살아도 된다.

여인은 호흡을 하는 것으로 봐, 생명엔 전혀 지장이 없다.

사내는 여인을 안고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선이 집중된 사람들 사이로 바다에서 백사장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얼굴이 너무 미인인지 사내 눈동자가 갑자기 휘둥그래 졌다.

그리고 갑자기 여인을 백사장에 패대기쳤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마누라잖아..!!"


200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