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강으로 2006. 1. 3. 00:34
 
우리 아들은 중학교 때 공부를 특별히 못 해 명문고를 못 가고 2류로 갔다.
공부를 못 했다는 기준은 명문고를 못 갔기에 못 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잘 한다 못 한다는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일까?
어느 학생은 일류 고등학교에서 전교 일등인데
그 일등의 자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학교 옥상에서 투신 자살을 했단다.
전교 일등이면 너무도 잘 하는데 아니, 10등 안에만 들어도 잘 하는데 자살이라니?
누구나 선뜻 이해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본인 생각이나 부모 생각은 달랐으리라.
그 들은 전교 일등은 당연하고 전국에서 몇 등을 하느냐로 따졌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일억은 많은 돈이라 생각했는데, 일억을 소유한 순간 1억은 많은 돈이 아니다.
일억은 당연한 나의 재산이고 1억이 빠지면 가난으로 받아들인다.
성적도 마찬가지다.
전교 1등을 했으나 기쁨도 잠시, 그 1등은 당연한 것이고 떨어지면 못 한 것이다.
그러니 잘 하는 경쟁자는 한 둘이 아니고, 그 1등이라는 자리에 연연한 당사자는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짐작이 간다.

노자는 虛의 철학을 말했다.
무엇이든 여유를 가지라는 교훈, 모든 쓰임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여유는 가진 자의 특권이 아닌가? 반문하기도 한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여유를 부릴 틈이( 虛)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는 허는 여유는 한 단계 낮추라는 이야기다.

집 사기 힘들면 전세로, 전세도 힘들면 월세로, 월세도 힘들면, 노숙자, 다리 밑으로..
양주 마실 돈 없으면 소주로, 소주도 안 되면 막걸리고, 하여튼 그런 뜻인 듯 하다.
잠자는 장소도 자기 몸에 딱 맞게 장소를 고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은 있어야 한다.
여행을 하는데 시간데 딱 맞추고 경비를 딱 맞춰 여행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약간의 시간과 경비의 어느 정도 虛(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한다.
무엇이든 다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자의 허의 철학대로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전세 돈 있으면 은행 빚으로 보태 집을 사려하고, 월세 보증금 있으면 빚을 지더라도 전세로 가려하고, 그러다 여기저기 빚더미에 갈 곳이 없어지면 노숙자, 다리 밑으로 간다.
이것은 노자의 허 와는 상반된다.

입시 문제도 그렇다. 지금 대학의 정시가 시작되었다.
입시 첫날부터 서버가 다운 될 정도로 입시 생이 몰렸다고 한다.
세 군데 정시 지원이 가능하니, 한 곳은 자신의 성적에 최대, 또 한 곳은 자신의 실력으로 적당한 곳, 또 한 군데는 떨어질까 두려워 하향 지원한 곳, 이렇게 세 곳을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운 좋게 세 군데 다 되었다면 어찌할까?
노자의 허 사상대로 하향 지원 한 곳을 택하는 입시 생은 몇이나 될까?
다는 아니겠지만 모두 노자의 허 사상의 반대로 최고 상향 지원한 곳을 택할 것이다.
꼴찌에서 바둥바둥 간신히 매달려도 명문대를 가면 된다.

내 자식도 고교 입학 시에 명문고를 보내고 싶었다.
물론 억지고 갔다면 못 갈 실력은 아니었으나 못 보낸 이유가 있었다.
큰딸이 명문고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봤다.
공부 잘 하는 학생만 모인 고등학교에서 다른 경쟁자와 떨어지기 싫어 밤 3시까지, 늦으면 새벽 4시까지 기본으로 공부를 했다.
부모가 일부러 공부하라 재촉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딸이 오히려 불쌍해 보였다.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성적이 쑥쑥 올라야 하는데
다른 경쟁자는 가만히 있다던가?
그렇게 열심히 해도 자리는 맨, 그 자리..
그나마 하지 않으면 떨어진다.
거기에 지탱하려는 딸년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아들은 노자의 虛의 철학대로 여유 있는 2류 고등학교를 보냈다.
그 곳에서 당연히 상위에 들었다.

예상대로 2류 고등학교에서 상위권에 들어 대학 가기는 더 수월했다.
수시로 두 곳을 택했다.
한 곳은 자신의 성적으로 최대로 잡은 곳, 또 한 곳은 여유를 두고 택한 곳,
결국 두 군데 다 됐다.
한 곳은 간신히 된 듯 하고, 한 곳은 여유 있게 장학생으로 합격을 했다.
나도 노자의 허의 사상을 따르자면 여유를 찾아 장학생으로 된 곳으로 보내야한다.

그 곳이 장래를 봐서 더 좋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곳은 장학생으로 우대를 받고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학업 성적이 우수하니, 교수들의 추천으로 좋은 곳에 취업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 처, 내 아들은 좀 더 높은 대학에 됐다는 이유 하나로, 장학생으로 합격 한 곳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래야 했을까?
우선 주위의 시선이다. 높은 대학을 포기하고 장학생으로 된 낮은 곳을 택했다면 주위에선 높은 대학에 떨어져 낮은데 갔다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그 하나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깨인 사람이라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노자의 허의 가리킴대로 넉넉하고 여유 있는 곳, 낮은 곳으로 가라고 아들을 설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러지 못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속인 중에 속인이고 도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