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놈 참 잘 죽었다.

산으로 강으로 2013. 9. 30. 19:10

일생을 살면서 보기 좋은 모습만 보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이 학교 잘 성장해서 결혼하는 모습, 어린 손자가 환하게 웃는 모습,

또는 들판에 활짝 핀 꽃의 모습, 산에 오를 때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 등등

영어로 필링이라고 하던가?

그렇게 좋은 모습만 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만, 때로는 나쁜 모습 안타까운 모습도 봐야한다.

차를 몰고 야외로 빠지다 보면 안타까운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차와 충돌 사고로 동물의 사체가 피를 흘리고 너부러져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신은 훼손되며 사체는 피와 범벅이 되어 흩어진다.

삭막한 세상,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

"에구~! 조심하지...!"

안타까운 마음만 가질 뿐이다.

때론 나도 야간 운전하다보면 가끔 고라니를 볼 수 있다.

이 놈은 차가 가까이와도 피하지도 않고 빤히 불빛을 바라보기만 한다.

내가 피해가야 한다.

천천히 고라니 옆을 피해가며 밖을 향해 큰 소리를 지른다.

", 이놈아! 조심해!! 오래 살아야지?"

천천히 느릿느릿 도로를 벗어나는 고라니의 뒷모습을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운전에 몰입한다.

어째든 야생 동물이 많이 죽기도 하지만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 만큼 좋은 모습을 더 볼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야생동물을 보는 것도 행복하지만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보기 참 좋다.

좋은 모습을 보려면 투자를 해한다.

"이거 내가 직접 농사지은 건데 한 번 드셔 보실래요? 방금 따 왔어요."

얼마 안 되는 양 이지만 검은 비닐봉지에 아무렇게 건네도 환하게 웃으며 무척 고마워한다.

나는 이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땅이지만 직접 농사를 짓는다.

물론 내가 신선한 야채를 먹기 위함도 있지만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이 이보다 더 큰 보람인 듯하다.

전해 줄 때의 그 환한 미소가 나를 큰 필링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내가 먹고도 너무도 많이 남는 충분한 양의 농작물을 재배하는 이유다.

얼핏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 오해 할 수도 있으나 전혀 아니다.

나는 나를 위해, 내가 좋아서 순전히 나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물론, 상대방은 예의상 환하게 웃고 가져가서 버리는지 맛있게 드시는지는 나도 모른다.

단지, 나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 앞에서 환하게 웃는 그 순간.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해 봄부터 괭이로 땅을 파고 풀도 뽑으며 일을 한다.

마치, 좋은 경치를 보기위해 열심히 산에 오르는 것처럼, 강태공이 월척을 낚았을 때 짜릿한 손맛을 보는 것처럼, 좋은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은 것처럼..

그래서 해마다 내가 먹기엔 너무도 많은 양의 야채를 심는다.

옥수수, 오이, 가지, 고추, 호박, 토마토, 참외, 수박, 등등..

그런데 올해는 변수가 생겼다.

올 봄이 시작 될 때 도 예년과 다름없이 밭을 찾았는데 누가 내 밭을 홀랑 갈아 놓았다.

괭이나 삽이 아닌, 농기구 트랙터로 로타리를 친 것이다.

'어떤 농부가 남의 밭을 착각했나?'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옆 땅 주인이 같이 갈아 놓은 것이다.

"시시하게 농사짓느니 차라리 내게 주쇼! 내가 가을에 콩 두어 말 드리리다."

하고 내게 협박 비스므리하게 제의 한 것이었다.

밭까지 갈아 놓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데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행복을 어디서 찾는다?

문득 생각난 곳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유산으로 받은 묵고 있는 땅이 있었다.

이 밭보다 좀 멀고 도로에서도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좀 걸어서 가야 하지만, 일부러 운동도 하는데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는 길에 산딸기도 있고, 벗도 있고, 야생복숭아도 있고, 오히려 더 좋은 듯 했다.

그 곳을 찾아 잡초를 걷어 내고 괭이고 개간을 해서 비닐도 씌우고 가지도 심고, 오이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어느 정도 시간이 된 뒤에, 말뚝을 치고 끈을 매려고 밭을 찾았는데 깜짝 놀랐다.

잘 자라던 가지, 오이, 토마토,.. 모두 사라진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가? 확인을 해 보니 고라니 발자국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 그랬구나! 여기는 산이 깊어서 야생동물이 자주 출연하는 곳이었다.

아직도 늦지 않은 봄, 다시 심기로 했다.

친구까지 데리고 가서, 가지심고, 오이, 등등 심고, 주위에 들어오지 못 하도록 찔레나무 아카시아 나무 등등,

가시나무로 둘어 쳐 놓았다.

, 가시나무를 뚫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뜯어먹지 못 하도록 어린채소 주위에 가시나무를 뺑 둘러놓았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고라니 쫒은 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다.

전기로 울타리를 만들라는 둥, 가시철망을 치라는 둥, 함정을 파라는 둥, 농약을 세게 치라는 둥,

그래도 제일 맘에 드는 내용을 하나 찾았다.

약국에서 크레졸을 사서 펙병에 반반씩 섞어서 5m 간격으로 놓으면 냄새 때문에 찾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다시 말뚝치고 끈을 매려고, 크레졸과 펙병을 몇 개 들고 밭을 찾았다.

그런데, 또 크게 실망하게 된다.

이 놈들이 가시숲도 헤치고 들어와 묘하게 모두 뜯어 먹은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이 원수를 어떻게 해야 갚는단 말인가?

힘들어 키운 내 새끼와도 같은 농산물을 이렇게 잔인하게 뜯어 먹다니...

차라리 일찍 뜯어 먹었으면 기대라도 안 하지, 웬만큼 큰 뒤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 그대로 아직 꽃도 못 피우고 운명을 다한 나의 농작물에게 어떻게 한을 풀어준단 말인가?

올가미를 놓을까? 독극물을 놓을까, 차우를 이용할까? 별생각을 다 했는데 뾰족한 수 가 없었다.

그저 농사를 포기하는 수밖에..

이제 모든 것 있고 오늘도 도로를 달린다.

외각 도로에 고라니 한 놈이 쓰러져 있다.

사람마음은 간사하다. 아니, 내 마음이 더 간사하다.

예전엔 불쌍하고 참으로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180도로 바뀌었다.

"고놈 참 잘 뒤졌다!'

얼마 지나다 고라니가 차에 수 없이 치어 피가 범벅이 되어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 고놈 보기 좋게 잘도 뒤졌다. 저런 놈들은 모두 짓 이겨서 사그리 죽여야 돼!"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이제 야채를 나누어 줄 때 환하게 웃는 이웃의 모습을 보고 즐기는 것 보다,

고라니 죽은 모습을 보며 행복을 찾아야겠다.

이제 고라니 만나면 피하지 말고 그냥 치고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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