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바퀴벌레

산으로 강으로 2013. 9. 30. 19:12

어릴 때는 바퀴벌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바퀴벌레는 바퀴처럼 동그랗게 생겨 굴러다닌다고 해서 바퀴벌레인지,

발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바퀴벌레인지 그 생김새가 궁금했다.

옛 고향에는 바퀴벌레는 없었다.

3억년의 역사를 가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 우는 그 유명한 바퀴벌레가 나의 고향에는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때문에 바퀴벌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시내로 이사 오고 바퀴벌레는 너무 많이 봤다.

요즘도 자정 무렵 불을 켜고 밖으로 나오면 천장에서 벽으로 벽에서 바닥으로 겁도 없이 슬금슬금 기어 다닌다.

살충제도 파리채도 급하게 찾으면 주위에 없다.

순간 본능적으로 손바닥으로 후려치면 잽싸게 숨어버린다.

"괘씸한 놈들~! 내일이면 독한 바퀴벌레 약을 사서 뿌려야지.."

이렇게 중얼거리고 다음 날이면 잊어버린다.

이유는 낮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환한 낮에는 활동하지 않고 사람들이 잠든 시간, 야심한 밤에 활동한다.

밤에 발견하면 살충제 사 와야지 하고 또 잊어버린다.

벼르고 별러서 드디어 살충제를 사 왔다.

그리고 바퀴벌레가 다닐 성 싶은 곳은 모두 뿌렸다.

장롱 귀퉁이, 씽크대 귀퉁이..등등..

하여튼 밟기만 해도 씨까지 모조리 죽인다는 잔인한 살충제를 골고루 충분히 뿌렸다.

그리고 얼마 후,

바퀴벌레 사체를 찾을 수 있었다.

대부분 안 보이는데서 죽었겠지만..

어떤 놈은 살아서 슬금슬금 내 앞에서 얼쩡거린다.

자칫 놓칠 수도 있다는 급한 마음에 발로 콱, 밟아 버렸다.

어떤 놈은 내가 있는지 모르는지 내 앞으로 슬금슬금 걸어온다.

"이놈이?"

"팍~!"

손바닥으로 힘껏 후려쳤다.

바퀴벌레는 내 손바닥에서 믹서가 되었다.

"에이~ 더러워 ~ "

즉시 세면대로가 씻었다.

다시는 손바닥이나 발바닥으로 잡지 말아야지..

바퀴벌레는 약에 취했는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잽싸게 피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미쳐서 오히려 나보고 죽여 달라는 듯 내게 다가온다.

어제 밤이었다.

아내는 안방에서 고이 잠이 들고 나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점 하나가 서서히 내게로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멈추다, 걷다, 보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저 놈도 약에 취했구나, 저러다 죽겠지.. 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 작은 점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점점 커지더니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래도 참고 애써 신경을 끄려 노력했다.

어차피 돼질 놈, 내 손을 더럽히기 싫었다.

그러다 죽으면 화장지로 싸서 버리면 된다.

그렇게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이놈이 자꾸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자꾸 내 앞으로 다가와 쳐다보고 알짱거리며 약을 올리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놈 봐라?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나?"

순간, 감정을 못 다스리고 또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손바닥으로 내려치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놈이 몸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이럴 때 손바닥으로 치면 놈은 바닥에 있지 않고 내 손에 달라붙는다.

전번에 경험을 해서 잘 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손에 가속도가 붙어 멈출 수가 없었다.

내려치고 한참동안 손바닥을 열지 못 했다.

그 불쾌한 관경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끈적거리는 불쾌한 느낌,

손바닥을 열기만 하면 나타나는 그 보고 싶지 않은 그 불쾌한 관경!

보고 싶지 않았으면 그냥 화장실로 가 씻으면 되는데 그래도 봐야만 할 것 같은 이 불편한 진실...

손바닥을 천천히 열어보니 바퀴벌레는 내 손바닥 정 중앙에 먹음직스럽게 믹서 되어있다.

"에잇~! 더러워 퇘! 퇘!!"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손을 씻으며,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놈의 바퀴벌레가 자살하려고 나를 이용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죽게 되어 있는데 고생하며 조금 더 사느니 자살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잡으려고 하면 그렇게 잽싸게 피하는 놈들이 일부러 내게 나타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너무 아파 죽고 싶은데 자살 방법이 없다!

물에 빠질 수도 없고, 끈으로 목을 맬 수도 없고...

그래서 자살 방법으로 인간에게 다가 가면 순간의 고통으로 생명은 끝난다.

그래서 나를 자살의 방법으로 이용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바퀴벌레에게 이용당한 거고...

3억년의 역사를 가진 바퀴벌레의 생명력!

겨우 20만년의 역사를 가진 인간!

바퀴벌레는 그 혹독한 지구의 환경변화도 견뎌내고 살아온 생명체다.

인류는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을지 모른다.

이렇게 똑똑한 바퀴벌레라면 원수 갚는다고 친척 친구 모두 불러 내게 공격하지는 않을까?

아프리카 메뚜기떼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다.

이긍~~~!! 별생각을 다~~~~ㅎㅎ

날이 새면 장롱 위치도 바꾸고 대청소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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