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따르릉~ 따르릉~

산으로 강으로 2005. 12. 26. 13:48
요즘은 내가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은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에서 오라고 난리들이다.
날씨가 추워서 그리고 연말이 시작되니 낮이면 고객들에게 전화에 시달리고 저녁이면 친구들에게 시달린다.
낮에는 추워 죽겠다 빨리 와 달라 성화에 시달리고, 오후가 되면 망년회 쐬주 한 잔 하자에 시달리고.

어제만 해도 오늘은 아무리 추워도 마지막 산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그래서 산악회대장 친구에게 약속도 했다.
꼭 가겠노라고.. 그런데 그게 어찌 내 맘대로 될까?
어제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난, 사실 낄 자격 없지만 충주에서 가까운 문경에서 한다는데 꼭, 참석하고 싶었다.

문경으로 차를 몰 때 또 산악회 대장에게 전화가 왔다.
"동수야! 낼 산에 꼭 가자."
난 정토 산악회 회원이다. 몇 년을 같이 산에 다녔다.
거기 산악 대장이 내 친구 주성이다.
주성이의 확인 전화에 안 간다 말못하겠다. 그리고 나도 꼭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후에 문경 모임에 가면서 집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등산 장비 좀 챙겨 달라고, 옷도 챙기고 아이젠, 그리고 방한 모, 도시락 등등..

그러나 문경에 도착해서야 내일 등산은 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는 추워지고 보일러 고쳐달라는 주문 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몇 군데 다른 업소로 소개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만의 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꼭, 와야 하겠다는 팬? 들의 성화에 도저히 다른 업소에 대타로 미룰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경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지만 그 쪽 팬? 들에게 탈출을 해 제천까지 다녀오니 새벽 3시 반이다.
잠을 이루는 둥, 마는 둥, 비몽사몽에 전화를 받았다.

새벽 5시 인 듯 하다.
"새벽 일찍 죄송한데요, 좀 빨리 와 주시면 안 되나요? 갓난아이가 있어요."
난 자동으로 벌떡 일어났다.
서둘러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옷을 갈아입고 일터로 행했다.

분명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 배도 고프지 않았다.
살을 에는 듯 한 추운 날씨지만 난 춥다 느낄 겨를이 없다.
일 보다 새벽부터 전화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하나 둘 날리는 흰 눈발이 걸음은 느리게 하는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 환자가 있어요."
여기는 늙은 노인만 둘 있는데 추워 얼어죽겠어요."
등등, 모두가 이지적인 생각에 빨리 와 달라 아우성이다.
나는 안 되겠으니 다른 곳을 알아봐 달라 유도를 해 봤지만 도대체 전화는 끊이질 않는다.

몸은 하나고 모든 사람들 요구를 다 들어 줄 수 없고,
이렇게 인기가 많을 땐 난 내 사업 철칙에 따른다.

첫째 우선은 단골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약자 우선이다. 갓난아이, 노인, 그리고 환자,
세 번째는 거리를 우선으로 둔다.
눈이 와 길이 미끄러운데, 먼 곳을 다녀 올 시간이면 가까운 곳에 몇 배를 더 고치기 때문이다. 먼 곳은 먼 곳의 기술자에게 맡긴다.
네 번째는 고치기 쉬운 순이다.
추운 날씨에 이미 얼어 터졌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더 이상의 진행은 안 된다.
그러니 고치기 쉬운 순위부터 고치면 최악, (얼어 터지는 일)상황은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날뛰고, 아침도 못 먹고 배고프다 느낄 즈음, 잘 아는 친척형에게 전화가 왔다.
"동수야! 너 보일러도 좀 고쳐야겠다. 주덕 사랑리란 곳인데 기술자 몇이 다녀갔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니가 꼭 좀 고쳐 줘라."
난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 쪽은 거리도 멀고 설명을 들은 상황을 봐 이미 얼어 터졌다.
노인 분이 계셨다 하더라도 이미 추워 다른 곳으로 피난을 했으리라.
그러니 그렇게 급한 상황은 면한 것이다.
그런데 그 형은 남의 사정도 모르고 자꾸 전화를 한다.
난 안 되겠다고 그 쪽 기술자를 부르라고 했더니 그 쪽 기술자가 못 고친 모양이다.

굳이 못 간다는 말은 못 하고 좀 늦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가까운 곳에 여기저기 정신 없이 쫓아 다녔다.
그러나 형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야, 동수야! 너 내가 부탁하는데 정말 이럴 거야? 너 부조 돈 내기 싫으면 빨리 좀 다녀와라."
등등..
시간이 흐를수록 협박에 가깝다.

친척형 때문에 더 일은 급해졌다.
여기 저기 바삐 다니다 보니 아침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점심때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내가 도대체 오늘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바삐 움직이고 일이 어느 듯 정리가 되니 어둠이 내리고 저녁이 되었다.

또 핸드폰 소리다. 울린다.
이제 핸드폰 소리에 경끼를 느낀다.
하루종일 핸드폰 소리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정겨운 음악소리지만 그 소리가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하고 있고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친절하게, 나는 성질대로 할 수 없다.
목소리 부드럽게..
"여보세요?"
"어, 동수니? 나 주성이야, 지금 등산에 다녀왔어. 산에 못 갔지만 망년회는 참석했으면 좋겠다."
주성이의 전화였다.
어제 꼭 가려했는데 올해의 마지막 산행 주성이랑 같이 가려했는데 못 갔다.
산행은 못 했어도 일년을 같이한 산악인들과 마지막 망년회는 참석을 해야하지 않는가.
"그래, 주성아! 늦더라도 꼭, 갈게 전화 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 바삐 서둘렀다.
마지막으로 주덕 사락리를 다녀와야 한다.
그것만 마치면 주성이랑 쐬주 한 잔 하며 피로를 풀 수 있다.

출발 하기 전,
형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들어간다고..
형은 노발대발 바쁜 나를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었다.
"너, 지금 전화 하는 내용이 뭐냐? 아직도 안 갔다는 이야기지?
너, 울 할머니 동사 하셨으면 너랑 완전히 인연 끊는다! 부조금도 필요없다."
무식하게 협박하는 형의 말은 웃어넘기고
서둘러 미끄러운 눈길을 향해 사락이로 향했다.
그런데 때는 눈도 많이 오고 차가 밀리는 러시아워 시간,
미끄러운 길에 차는 자꾸 밀리고 있다.
답답한 마음..

그 때였다.
레카차가 앵앵~ 거리며 체인 감은 바퀴를 요란하게 울리면 법규도 무시한 채, 갓길로 역 방향으로 마구 마구, 꽥, 꽥, 거리며 지나간다.
교통사고는 분명 비극인데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요란 벅적하게 요리 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이크, 또 사고구나! 이렇게 막히면 언제 보일러 고치고 언제 주성이와 함께 망년회를 보내 누.."
한숨이 저절로 나왔지만. 어쩔 도리 있나? 기다리는 수밖에..
거북이 걸음을 한지 몇 분이 걸렸는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드디어 접촉사고 난 현장을 잽싸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주덕을 지나 쌓인 눈을 조심조심 운전하여 드디어 사락리 도착,
현장까지 가려면 차는 가지 못 한다.
이제부터 연장만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고치기는 이미 포기를 했다.
얘기만 들어도 벌써 터졌기 때문에 응급초치(방바닥 난방배관 얼지 않게 물 빼기) 만 하고 오면 된다.
눈길을 조심조심 언덕길 넘어 현장에 도착하니 할머니 한 분이 추위에 떨며 계신다.
난 미안한 마음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늦어서 죄송해요. 보일러 고치러 왔어요."
할머니는 너무 추워서 인지 멍하니 날 바라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일러? 벌써 다 고치고 갔는데 왜 또 왔어?"

"으~~으~~으~~~~~~~~~~~~~~~~!!"

꼴, 뵈기 싫은 형~~!!
더 말하기 싫다.
더 쓰기도 싫다.

그리고...
좀, 정리 좀 하자.

지금 곰곰이 생각하니...?
난 어제 3시 반에 들어와 다섯시에 일어났다.
잠을 한시간 반...? 그것도 제대로 잤나?
그리고..........................?
"참! 나 아침은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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