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밀고자 이야기

산으로 강으로 2013. 9. 30. 18:59

나는 티비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쓸데없는 내용에 신경 쓰며 시간낭비하기 싫기 때문이다.
내 아내는 나랑 정 반대다. 드라마를 잘 본다.
손뼉을 치며 깔깔대며 보기도 하고 때론 훌쩍거리며 눈물 흘리며 보기도 한다.

손뼉 치며 웃어도 훌쩍거리며 울어도 무심히 지나쳐야 된다.
궁금해서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봤다가는 재미없는 드라마 이야기를
처음부터 현재까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슬쩍 자리를 피했다가는
드라마 내용보다 몇 백배 더 듣기 싫은 소리를 얼굴 마주할 때마다 들어야 된다.

우리 부부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둥, 밖에서 다른 사람에겐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대하고 집 마누라는 손톱의 때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둥, 독선적이라는 둥,
바가지소리 비슷한 잔소리가 끝없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듣다 보다 지쳐 "아이쿠 여보, 내가 잘못했소!" 이 소리가 내입에서 나와야 바자지 긁는 소리는 중단된다.

그리고 끊어졌던 지겨운 드라마 이야기도 마저 들어줘야한다.
의붓아버진데, 어쩌구 저쩌구~
이혼을 했는데 본 남편이 어쩌구 저쩌구~
"응,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아, 그랬구나!" 이런 추임새도 중간 중간 넣어 줘야한다.
그리고 마무리 장단도 꼭 맞춰 줘야한다.
"아, 그래서 당신이 눈물을 흘렸구나!"
만약 듣는 태도가 미흡하면 마음속 깊이 반성을 안했다고 바가지 긁는 소리가 리바이블되기 때문에 신경 써서 잘 들어 줘야 된다.
결혼생활 20여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나도 생각해 보면 참 불쌍한 놈이다.

이야기를 본론으로~
내가 보는 티비채널은 영화나 스포츠 뉴스 바둑 다큐멘타리. 정해져 있다.
드라마는 물론 안 본다.
때문에 내가 티비 볼 때 우리 부부는 서로 헤어져 있다.
마누라는 안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마누라가 거실에 있으면 난 안방에서, 이렇게 티비볼 때는 서로 헤어져 있다.


그런 나에게 무심코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요즘 사육신이란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드라마가 아니고.
다른 유성방송에서 재탕하고 있는 왕과 비라는 드라마이다.

수양대군이 어린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발하여 사육신들이 세조를 쫓아내고 단종 복위를 꾀하는 드라마로
역사적인 내용으로 뒷이야기 전개도 다 알고 있지만 흥미진진하기에 몇 편을 빼놓지 않고 봐야했다.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이개 등등.. 단종복위를 노렸지만 계획은 밀고자에 의해 무산되고 충신들은 육신에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능지처참 당한다.
이 뿐이랴, 가족 남자들은 젖먹이 아이까지 사사 당하고 부녀자는 노비로 강등된다.
이 장면을 살 떨리는 분한 마음으로 봐야했다.

밀고자는 어떻게 됐을까?
그도 처음엔 단종을 복위하려는 충신 무리에 섞여 있다가 일이 탄로 날까 두려워 고자질 한 사람이다.
고자질 한 자의 이름은 이름부터 고자질 하게 만들었다. 김질!

김질 도 상식적이라면 고자질하기 전 까지 세조를 죽이려 했던 충신 무리 중 하나였으므로 응당히 같이 능지처참 당해야 옳았으나 고자질로 모든 죄가 사면된 것이다.

목숨을 같이 하자고 맹세를 하고 일이 탄로 날까 두려워 자신의 목숨은 구하고 충신들과 그 가족까지 말살시킨 배신자! 저런 놈이 죽어야 하는데 역사는 이렇게 거꾸로 흐른 것이다.

배신자가 밀고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삼문의 치밀한 계획에 수양대군을 쫓아내고 단종이 복위되어 조선의 역사 아니, 대한민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밀고한 배신자.. 아아~~ 싸가지!

또 다른 밀고 이야기..
오래된 영화 새벽의 7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나치에 대항하여 주인공 일행은 나치의 장군을 저격하는데 성공한다.
나치의 보복성 수사망은 점점 좁혀 들어올 때 동료 중 한명의 밀고로 인해 나치로부터 집요한 추격을 받게 되고, 마침내 성당의 지하실에서 마지막 대항을 시도한다.

7명의 대원중 다섯은 전투 중 사망하고 최후의 2인이 남았을 때 나치는 지하실에 호수 물을 채우기 시작한다.

겨울에 찬물이 점점 채워지고 더 이상 희망이 없자 둘은 서로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자살을 선택한다. 결국 7인 모두 전사한 것이다.

밀고자 한 명만 없었다면 새벽의 7인은 모두 무사히 수사망을 피하고 살 수 있었다.
밀고자 한 명도 그 대열에 있다가 잡히면 죽을까 두려워 자신만 살기 위해 7명을 버린 것이다.
아아~ 싸가지!

결국 새벽의 7인은 밀고한 한 사람에 의해 죽임들 당하고 밀고한 놈은 살아서 자전거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아마, 포상도 받았을 것이다.

일정시대 때의 얘기다.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 운동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있었다. 조선민족이라면 당연히 그를 도와야 했다.
그런데 일본 놈이 내려주는 상금에 눈이 어두워 독립 운동하는 사람을 밀고해 팔아먹는 조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가까운 친척이,
얼마 되지 않은 역사이기에 혹시 그 후손들이 이 글을 보면 가슴 아파할 것 같아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다.

밀고한 친척은 평생 잘 먹고 잘 살고 독립 운동한 정의는 옥에서 죽임을 당하고
이렇게 고자질의 불의가 정당화 되는 인간의 역사에 삶의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결국, 고자질한 불의는 이기고 정의는 지는 것일까?

조조라는 인물이 있다.
삼국지소설의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서 싸가지 없는 놈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요즘도 싸가기 없는 사람을 두고 조조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조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부분도 많았다.

당시에 간신배들인 내시를 몰아내고 조조가 정권의 실체를 장악하고 있을 때, 한 씨 왕조의 복권을 꾀하는 자가 있었다.

역적 조조를 몰아내고 왕권을 되찾으려는 이야기는 마치 조선왕조의 사육신 드라마와 흡사하다.
그 충신들은 세조때 사육신처럼 많이 있었다.

주취의 길평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 길평 과 뜻을 같이한 무리들이 조조를 독살하고 한나라의 왕권을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길평의 거사를 엿듣고 밀고 한 자가 있었다.
밀고한 자는 다름 아닌 길평의 첩으로 그 첩과 통정을 한 어떤 놈,

거사는 밀고자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길평은 숫한 고문을 당하다가 스스로 주춧돌에 머리를 찧어 생을 마감한다. 길평과 뜻을 같이 했던 충신들도 삼족이 멸하는 참변을 당했다.

그런데, 조조에게 밀고한 놈은 어찌 되었을까?

우리나라 역사의 세조 같으면, 또 독일의 나치 같으면, 독립군을 신고한 일제 같으면, 간첩을 신고한 일등공신으로서 상금과 함께 포상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조조는 달랐다.
자신의 목숨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 주인을 배신한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두 년 놈의 모가지를 잘라 저작거리에 효수하였다.

조조~~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싸가지 없는 인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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