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 한 시간 탁탁, 소리를 내며 손톱을 깎는다.
그 다음 왼발을 내 밀고 발톱도 깎는다,
그리고 오른발 까지.
다 깎고 나면 손바닥으로 여기저기 튀어나간 손톱 발톱들을 쓸어 모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 때는 나의 신체의 일부분이었던 나의 손톱과 발톱,
내가 어떤 일을 하던 할 수 있도록 내 손끝과 발끝을 고정시켜 주었던 그 손톱과 발톱이
이제 너무 커서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미련 없이 탁탁, 깎아서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거울을 보니 옆머리가 귀를 덮으려하고 있다. 지저분한 머리를 제거하기 위해 이발소로 향했다.
싹둑싹둑 소리를 니며 머리카락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발이 끝나고 이발사는 바닥을 쓱쓱 빗자루로 쓸어 쓰레기통으로 버린다.
매일 감겨 주고 빗어주고 시시 때때로 관리를 하며 귀하게 여겼던 머리를
이제 길어서 보기 싫어졌다는 이유로 몰인정하게 싹둑싹둑 잘라버린다.
이빨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치과에서 어금니 하나를 뽑았다.
뽑혀진 이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간호원에게 그 모습을 들켰다,
간호원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작은 투명봉지에 이빨을 넣어 내게 건네주었다.
이제 내 곁을 떠난 내 이빨, 너무도 수고를 많이 한 내 이빨,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별이 아쉬운 듯 수 없이 호주머니에서 이빨을 꺼내어 보았다.
수십 년 동안 그 이빨은 나의 신체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내 곁을 떠난 내가 아니다.
한 때는 너무 아프게 하며 괴롭혀서 신경을 죽인 식물이빨로 만들기도 했었다.
감정이 없는 식물 이빨이 된 후 십년은 더 내 곁에 머물렀나보다.
씹고 부수고 어떤 음식이든 감수하며 내 소화를 위해 수많은 세월을 봉사해 온 내 이빨,
뽑힌 이빨의 가운데 선명한 검은 빛이 수많았던 세월과 수고를 말 해주고 있다.
어릴 때, 이빨을 뽑으면 그 이빨을 초가집 지붕에 홱. 던지며
"헌 이빨 줄께 새 이빨 다고..!"
이렇게 외쳤는데 요즘은 초가집도 없고 딱히 어디 휙 던질 곳이 없다.
치과에 두었으면 그냥 쓰레기통으로 향했겠지만 왠지 그러긴 싫었다.
손톱이나 머리카락 보다 이빨에게 더 미련이 깊은 것은
그를 대신할 또 다른 이빨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근데, 이 이빨을 어찌 처리하지?
고이 간직했다가 내가 죽을 때 나와 함께 묻어 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남길까?
에잉~~ 쓸데없는 생각!
망치를 들어 단단한 돌 위에 올려놓고 힘껏 내려치다가 갑자기 이빨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내 입안에서 수많은 음식물을 분해해 주었는데 망치로 아작을 내다니 이러면 수고한 대가가 아니지..
포기하고 호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다음날 이었다.
뭔가 깨질듯 한 비명 소리가 날 놀라게 했다.
"왜 그래~~?"
거실로 나가니 마누라는 탁자위에 내 이빨을 가리키며 내게 항의했다.
"이게 뭐야? 이런 걸 왜 이런데 올려놨어? 깜짝 놀랐잖아~~!!"
순간, 어제 잠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무심코 탁자위에 올려놓은 이빨을 깜빡했다.
마누라는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화장지에 이빨을 싸서 밖으로 향했다.
험악한 분위기에 그 귀한 걸 왜 버리느냐고 감히 따지지 못 했다.
불쌍한 내 이빨!
이빨 못지 않게 내가 또 정을 주는 또 하나 있다.
십 수년째 타고 다니는 내차가 그 중 하나다.
2000년도가 되기 전 99년에 구입했으니 만으로 16년이 지나고 17년에서 두 달이 지나고 있다.
불과 작년만 하더라도 아니, 올 봄만 하더라도 차를 바꿀 계획은 없었다.
때문에 작년 가을에 스노우타이어도 새로 구입하고 올 봄에 새로운 여름용 타이어로 또 교체도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여기 저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차가 탈색되고 또 하부에 부식되었다 하더라도 기능만 좋으면 버티겠는데,
차도 나이를 먹다보니 여기저기 문제가 자꾸 발생한다.
수리도 한계가 있느니 차라리 차를 바꾸는 편이 낫다는 카쎈타 사장님의 말씀이 나를 흔들고 있다.
그렇게 얘기 할 거면 올 봄에 타이어 바꾸기 전에 말씀하시던지..
하긴, 처음 이 차를 구입할 때 10년만 타려고 했었다. 그런데 17년째 접어들고 있으니 바꿀 때도 되긴 했다.
한 때 어머니도 태우고 여행도 다니고 내 자식들은 학교에 태워주고 오고, 수많은 짐을 싣고 나와 함께 일 해온 내 차!
차는 내 신체의 일부분도 아니었고 살아있는 생명체도 아니지만 왠지 이별하기 싫다.
신차를 구입한다고 해도 단점은 있다.
혹, 누가 긁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신경 쓰이고 세차도 자주 해야 하고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까, 은근한 걱정거리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차는 누가 긁고 지나가건 말건, 세차도 하나마나, 훔쳐간들 또 어떠리오.
신차 보다는 현재의 차가 마음적으론 훨씬 더 편하다.
그래도 만약에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해 알아볼 필요는 있었다.
내 차는 중고 값으로 얼마나 할까?
구입 할 때는 보험료 세금 포함해 2000만원 가까이 들었는데..
가격만 맞으면 중고 건 신차 건 마음 독하게 먹고 바꿀 계획이었다.
그런데 중고매매사장님 말씀이 괘씸했다.
내 차는 가격으로 쳐 줄 수 없고 페차장 가면 45만원 정도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잘 굴러가는데 요즘 자전거 값도 안 나오다니?
이번엔 신차를 구입하면 얼마나 쳐 주나 알아봤더니 백만원 까지 쳐 준단다.
에잉, 차라리 내가 직접 매매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일일광고지에 광고를 냈다.
200만원에 내 놓으면 50만원 깎여도 150만원은 받지 않을까, 얄팍한 속셈이 있었다.
이윽고 전화가 걸려오고 집 앞에서 매수자와 만나게 된다.
매수인은 내 차를 떨떠름하게 보더니 그래도 싼 가격이 맘에 드는지
현재 이 차의 문제점과 또 장점은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난 솔직히 말해 줬다.
싸이드브레이크는 고장 난 상태고, 또 운전 중 탈탈거리는 소리가 나니 점화플러를 교체해야 되고,
또 클러치가 닳았으니 미션도 손을 봐야 할 것이고, 또 외간상 부식은 선생께서 보시는 그 대로라고 했다.
그러자 그 매수자는 매매가 보다 수리비가 더 들겠다며 포기하려는 듯 하다 질문을 해왔다.
"그렇다면 장점은 뭔가요?"
장점이라? 물론 있었다.
평생 사소한 접촉사고 밖에 없는 무사고 차 이고. 그리고 주인을 하나밖에 안 모신 적토마 같은 차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매수인은 관심을 가지는 듯 했다.
"그럼, 사장님이 관운장이요?"
그 말에 분위가 좋아졌다.
"아, 아니지요. 저는 여포지요. 사장님이 이 차를 구입하시면 관운장이 되십니다. 하하하!"
하며 아부를 했다.
그러자 매수자고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같이 따라 웃었다.
매수자는 재미있는지 또 물어왔다.
또 장점이 있습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이런 답변이 튀어나왔다.
"예, 또 있지요. 제가요, 술을 엄청 마시는데 16년 동안 음주에 한 번도 안 걸린 차입니다."
........................?
그러고 말을 던지고 나니 이 차에게 정이 더 깊어졌다.
갑자기 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