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하루, 가까운 산이나 다녀와야겠다 생각하며 차에 올랐다.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어저께 만난 과수원 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추석에 판매할 사과를 상자에 잔뜩 쌓아놓고 일을 걱정하는 친구가 떠올라 운전 방향을 돌렸다. 친구와 함께 사과를 상자에 담는 일이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갈 때 50대 초반의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사과 두 상자 사러 왔습니다. 작년에 여기서 샀는데 무척 맛있어서요." "네, 어서 오세요." 친구는 손님을 반겼다. 작업을 잠시 멈추고 커피타임이 돌아왔다. 손님은 밖에 나갔다 오더니. "제 집 사람도 같이 왔는데 들어와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히 괜찮지요, 모시고 오세요." "제 집사람이 몸이 좀 불편합니다" "괜찮습니다. 조심해 모시고 오세요." 친구는 불편하다는 손님의 아내를 모시기 위해 같이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 가면 흔히 보는 환자인데 평범한 일터에서 보는 환자의 모습은 왠지 낯설어 보였다. 오른쪽 발이 없었고 그 발에 기부스를 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신발을 신고 남변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걸어 들어와 긴 호흡과 함께 간신히 의자에 앉았다. 손님 설명에 의하면 아내는 당뇨병으로 발끝이 썩어 들어가 일 년 전에 절단했다고 한다. 쉽게 아물지 않아 풀었다가 다시 기부스를 하면서 일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오늘도 서울 병원에 가야하는데 완전히 풀어 줄지는 가 봐야 안다고 했다. 또 양 팔에는 여기저기 검은 흉터가 보였다, 흉터라기보다 상처라고 해야겠다. 그 상처 주위에 검붉게 보이는 것은 아직 낫지 않았고 그 상처역시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한 흉터가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도 있음을 보지 않고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손님이 떠난 후. 난 무엇에 한 방 맞은 듯 멍하게 앉아있었다. "너 무슨 생각하니?" 그 말에 나는 깨어났다. 나는 너무도 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에 가끔 무료함도 느끼고 술도 마시고 산에도 다니고. 올 여름엔 덥다고 계곡도 다녀오고 동강에서 다슬기 잡으며 멱도 감으며 휴가를 보냈다. 가끔 삼겹살 구어 먹고 술도 즐기며 얼마나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 손님 부부들은 올 여름 그 무더운 더위에도 휴가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오직 병마의 싸움과 올인하는 그들 부부에 비하며 나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 맹물만 먹고 살아도 가족들 모두 건강함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내 아내는 아프기커녕 돈 번다며 직장을 다니는 호화도 누리고 있다. 내가 가끔 산에 다니고 지금 친구의 일을 돕는 것조차 그들에 비하면 사치일 뿐이다. 나는 저 손님의 나이 때도 오늘과 같은 삶을 누렸고 지금도 그 삶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병마와 싸워야 하고 내 나이가 됐을 때도 잘 된다고 보장 못하는 불안한 삶이 예상된다.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야만 되고, 나는 또 이러한 삶을 누려도 되는지. 나는 누구이고 또 저들은 누구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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