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꽁트) 백수와 교수

산으로 강으로 2013. 9. 30. 19:27

머식이는 얼마 전 회사의 부도로 실직 당했다.
돈 버는 재주는 시키는 대로 일 하고 월급이나 받는 재주밖에 없는 머식이가
실직 당하고 보니 사업을 하기엔 아는 것이 없고, 취직을 하자니 받아주는 곳이 없어 졸지에 백수가 된 것이다.

백수가 되었다고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낮잠을 자는 것도 일이요, 하늘을 보는 것도 일이요, 땅을 보는 것도 일이기에 돈을 못 벌 뿐이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백수의 하루 일과는 정해져 있다.
오전 9시에 일어나 남산에 다녀오면 12시 쯤 된다.
마누라 없는 집에 보온밥솥에서 밥 한 공기 뜨고, 냉장고에서 김치 꺼내고, 아침에 마누라가 끓여놓은 가스버너위에 된장찌개 데워서 대충 점심 한 끼 때운다.

거실로 자리를 옮겨 티비 켜고, 이리저리 채널 돌리다 피곤하면 한 잠 늘어지게 잔다.
오후 3시쯤이면 일어나 실직당한 동료에게 전화하고 생활정보지를 뒤척이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간다.
자영업 하는 친구 또는 선배 후배 사무실을 전전긍긍하다가 저녁이면 소주 한 병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누라 퇴근 지켜보고 소주 한 병 들이키며 밤 1시나 2시쯤 거실에서 티비 채널과 싸우다 졸리면 잔다.

하루 일과 끝,

백수로 하루하루를 때우는 머식이는 무슨 낙으로 삶을 살아갈까?
백수라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머식이 에게도 꿈이 있다.
그 꿈은 일주일 중 토요일에 목표를 두고 살아간다.
월요일 로또를 사고 토요일 까지 희망에 부풀어 토요일 까지 살아간다.
로또에 당첨되면 젤 먼저 뭘 할까? 마누라 다이아반지부터 사 줄까? 멋진 벤츠 승용차부터 구입할까?

토요일 꿈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로또 구입한 날 부터 토요일 까지는 행복하다.
토요일 꽝이 발표 되면 일요일은 하늘 원망하고 땅을 원망하고 조상님 원망하고 재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일요일을 보낸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로또의 꿈꾸기 시작한다.
이렇게 일주일을 희망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마누라의 눈길은 달갑지 않았는지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행운을 바라보고 싶으면 가능성 있는 곳에 도전하세요, 동네 아줌마들이랑 행사장에 다녀보세요, 행사장 가면 화장지, 우산, 전자계산기, 플라스틱대야, 다 공짜로 줘요. 절대 꽝은 없어요. 시청에 교양강좌를 가든지.. 강좌 끝나면 추첨해서, 티비도 주고, 자전거도 주고, 엠피쓰리도 주고, 고추장도 줘요. 로또처럼 돈 도 안 들어가요. 제발 좀 돈 들어가고 가능성 없는 로또는 그만하세요....."

백수인 머식이는 마누라의 비꼬는 식의 말투에 죄인이라도 된 듯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리 백수라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이다. 가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나보고 아줌씨들이랑 화장지나 한 보따리 들고 거리를 할보하라고? 돈 못 번다고 가장을 아주 깔고 뭉개네..!'
머식이는 마누라에게 자존심이 뭉개져 평소보다 소주 한 병을 더 마셨다.

평소보다 잠을 늦게 깬 다음 날 아침,
머식이는 엊저녁 술기운이 남아 있어 띵한 머리와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부엌을 찾아 버너위에 해장국을 기대하며 냄비 뚜껑을 열었으나 조그만 냄비 속엔 두부찌개만 조금 남았을 뿐이다.

"나쁜 에펜네..! 아무리 바빠도 해장국은 좀 끓여놓고 출근하지.."
냉장고 이 구석 저 구석 뒤지다 포기하고 주방을 나와 거실이 앉았지만 더부룩한 속과 찌뿌등한 기분에 티비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처럼 밖에서 해장국을 사 먹을까?
머식이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걸어서 터덜터덜, 시청 앞 소문난 해장국 집에 들러 보니,
'흠메~! 해장국이 한 사발에 육천 원? 아니, 언제 올랐대? 사천 원으로 기억되는데..'
잠바속주머니를 뒤져보니 종이 한 장만 잡힌다.
딸랑 만원, 만원 중 오천 원은 로또 사야 되는데 해장국 먹고 나면 한 주의 희망이 사라진다.
엉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장국 집을 나섰다.

'꼭, 해장국으로 해장해야 되남? 해장거리는 딴 것도 많다 이거야..."
조금 걸어가다 편의점에 들러서 펙으로 된 소주 두 병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술에는 술, 해장에는 술이 최고지..'

제법 큰 정원 의자에 앉아 펙으로 된 소주 한 병을 마시자 따스한 열기가 온몸에 퍼지며 찌뿌등한 기분도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술 기운에 모두 풀렸다. 게슴츠레한 눈은 뜨고 세상을 바라보자 큰 건물이 눈앞에 들어온다.
'저 건물이 뭐더라? 어디서 많이 본 건물인데...‘
‘아~~ 충주시청이구나!'

시청하니까, 어저께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떠 올랐다.
'시청에서 교양강좌만 들으면 고추장 준다고? 그래, 여기에 앉아 있으나 시청에 앉아있으나 앉아 있기는 마찬가지, 시청 회의실에 앉아 있다가 고추장이나 타서 나오자.'

때 마침 교양강좌 날 인지 흰색 바탕에 화살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판 지시에 따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자, 중년 아줌씨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회의실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알딸딸한 술기운은 부끄러운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용기를 배로 증가 시킨다.
남친은 전혀 없는 가정주부들 사이에 줄을 서서 안내원에게 술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숨을 멈추고 번호표를 받아들고 서둘러 회의 에 들어가 큰 호흡을 하였다.
"휴~우~~!"

회의실 맨 뒷자리에 자리 잡고 졸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다.
자면 안 된다, 자다가 쫓겨나면 고추장은 꽝이 된다, 자면 안 된다, 주머니에 펙으로 된 소주 한 병을 꺼내었다.
한 병을 다 마실 쯤 박수소리가 요란하고 깔끔하게 정장한 중년남자가 어느 대학교 교수로 소개되고 강의가 시작 되었다.

지루한 서론으로 끝나고 강의 핵심 내용을 강조하며 교수님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질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옛날 60년대 GNP 는 87달러, 현재 2008년도 GNP 는 20,000달러. 무려 백배가 넘어섰습니다. 물질이 행복을 좌우한다면 우리 국민 모두는 행복해야 합니다. 현재 여기 찾으신 여러분, 모두 행복하십니까, 아니지요? 그렇다면 옛날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었을 까요? 아닙니다. 옛날 가난한 시절에도 행복한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마음에서 왔습니다. 스스로의 만족,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면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지럴허네~!"
교수님의 힘이 들어간 강의에 잠을 깬 머식이는 중얼거리는 소리로 지껄였지만 그 소리는 조용한 경청하는 객석을 지나 무대 위 교수님에게 까지 전달될 정도였다.
교수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강의는 계속 되었다.

"세 잎 크로바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객석 여기저기에서 말이 튀어 나왔다.
"행운입니다. 행운입니다! 행복입니다."
교수님의 말은 이어졌다.

"똑똑하십니다. 세 잎 크로바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행운은 네 잎 크로바의 꽃말입니다. 우리는 행운인 네 입 크로바를 찾으려고 행복인 세 잎 크로바를 짓밟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행운도 목표는 결국 행복입니다. 찾기 어려운 행운을 찾기보다, 찾기 쉬운 행복을 선택하세요. 행복은 세 잎 크로바처럼 우리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매 주 행운을 찾아 로또를 사는 머식이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치 자신을 향해 비꼬는 말투로 전해 들었다.
엊저녁 마누라에게 한 마디 대꾸도 못 하고 당했지만 더 이상 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지럴하고 있네~! 있는 새끼들이나 그런 소리 하지, 없어 봐라 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로또 사게 돼있어요~오~~!"
이번엔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대 놓고 떠드는 소리였기에 객석 모두 연단에 있는 교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순간 객석은 찬물을 끼 얹은 듯 조용해졌다.

객석 교수님을 향한 청중들의 시선이 머식이가 있는 뒤로 향하자 용감해진 머식이는 벌떡 일어나 더 큰 소리로 지껄였다.
"행복도 쩐이 있어야지...! 요즘 세상에 쩐 없으면 마누라도 무시하고, 자식들도 무시하고, 친구들도 무시하고, 쩐 없으면 행복이고 나발이고 없다야~아~~! 죽지 못해서 로또 사는 사람의 심정을 너는 아~아~~니?"

이 쯤 되자 지켜만 보던 안내원들이 머식이에게 들이닥쳤다.
"아저씨! 나가세요, 술 마셨으면 가만히 계셔야지 어디에서 행패입니까?"
머식이의 팔을 잡고 끌어낼 태세였다.
당당했던 머식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실수를 했습니다. 조용히 할게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좀 이따 고추장 타 가야 돼요."
굽신굽신하며 사과하는 머식이를 본 안내원은 반신반의 하면서 머식이를 풀어 주었다.
"또 시끄러우면 끌어 내겠습니다."
"네,네.. 입 다물고 가만히 있겠습니다."
안내원은 미심쩍은 듯 머식이와 가까운 곳 가장자리에 앉았다.

경색 되었던 교수님의 표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환한 얼굴로 미소를 띄우며 강의를 이어갔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 하십시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하십시오. 최선을 다 하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여우가 토끼를 잡으려 했는데 토끼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우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함이었지만 토끼는 목숨이 걸려있기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일이든 목숨이 걸려 있으면 최선을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렵다고 포기 하지 마시고 목숨을 걸렸다고 생각하시면, 무슨 일이들 다 이루워 질 것입니다."

교수님의 말이 끝나자 머식이는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따졌다.
"하이고~ 야~~아! 우리나라 여우가 그래서 멸종 돼~앴~~니? 여우도 굶으면 뒈지는데, 목숨이 걸린 건 토끼나 여우나 마찬가지 아니~니~~? 여우나 토끼나 잘 뛰는 놈이 이기는 거지.. 목숨이 걸리고 어쩌고, 웃기는 소리 마라 야~!!"

이쯤 되자 안내원 두 명이 들이 닥쳤다.
이번엔 사정이고 뭐고 무조건 끌어낼 태세였다.
머식이는 또 사과했다.
"하이고, 선생님들 미안합니다. 진짜로 한 번 봐 주세요, 나 고추장 타 가야 돼요.."
안내원은 들은 척 말은 척 발버둥치는 머식이를 힘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경색된 모습으로 가만히 지켜보시던 교수님이 한 마디 했다.
"선생님들, 그 분 그냥 내버려 두세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그 분이 그런 분인 것 같으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난 괜찮습니다."
교수님의 너그러운 말씀에 안내원도 팔에 힘이 풀렸다.
머식이는 안내원의 팔을 뿌리치면서 소리쳤다.

"이제 다 끝났는데 왜 그러세요? 고추장만 당첨 받으면 되는데...."
객석은 주부들의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로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이 쯤 되자 아무리 자상하신 교수님도 심사가 뒤 틀렸다.

"술 취한 개라고 하지 않습니까? 개도 고추장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그러자 또한번 객석은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로 회의실이 떠나가는 듯 했다.

머식이는 벌떡 일어났다.
무어라 따질 듯하다 안내원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고 기가 죽어 그냥 앉았다.
조금만 참으면 고추장 추첨이 있기 때문 인 듯 했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어졌다.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겠네요, 이것으로 제 강의는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돌아 가십시요. 모두들 행복 하십시요."
박수 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지고 그 소리가 잦아 질 즈음 교수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저 뒤에 앉으신 심사가 뒤틀린 분, 제가 시간이 없지만 특별히 개인상담해 들리겠습니다. 이 강단 옆 대기실로 오십시요."
그러자 객석에서는 또 다시 큰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교수 말이 끝나자 머식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고추장 당첨 발표가 있는 것을 까맣게 잊고 교수를 만나러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교수님은 기다렸다는 듯 머식이의 멱살을 잡고 흥분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야, 임마! 술 처먹었으면 가만히 있지, 누구 강의 망치려고 작정했니?"
멱살을 잡혔다고 당하고 있기만 하는 머식이는 아니었다.
머식이는 술기운으로 교수님의 손을 비틀어 홱 뿌리쳤다.

"지럴허네~! 행복이고 지랄이고 전번에 꿔간 3만이나 내놔 이 새끼야.. 교수란 놈이 백수 돈이나 떼먹고..?"
"내가 언제 꿔 갔는데?"
"이제 오리발이네.. 얌마! 학성이랑, 화영이랑, 영필이랑, 같이 술 마실 때 꿔갔잖아? 아니면 갸들 한테 물어 봐~!!"
"난, 기억이 없어.. 그러니까, 못 줘! 사실 이라도 승질나서 못 줘!"
교수님과 머식이는 어릴 때 부터 죽마고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37번 안게십니까? 37번.."
회의실 안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순간 머식이는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번호를 확인하였다.
"네, 37번 여기에 있습니다."
소리치며 회의실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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