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되었나보다.
어느 지인이 고양이 새끼를 그냥 줄 테니 가져가라고 내게 권하였다.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기에 정서적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생각하고 데려왔다.
문제는 아내였다.
아내는 애완견이건 애완고양이건 결사 반대였다.
이유는 아무리 목욕을 시킨다 해도 털이 빠지기에 건강에 안 좋고, 신경 쓰이고, 또 이별할 때 괴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에서 키우지 말고 밖에서 키우자고 설득했다.
비록 밖이지만 다른 들 고양이들도 겨울에 얼어 죽지 않는 것 보면 밖에서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밖에서 키웠는데 처음엔 목에 줄을 매어놓고 키우다가 일주일 쯤 지나 뒤 목줄을 풀어 줬다.
자유를 준 것이다.
여기가 싫어 들 고양이가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다른 주인이 더 좋다면 그렇게 하고 ..
하여튼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겨울이 오면 밖에서 키우기가 안 스러워서 미리 훈련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방안에서 키울 수는 없고 추우면 따듯한 양지쪽을 찾든지, 밤이면 보일러 연통을 껴안고 지내든지, 들 고양이처럼 살아보라고 줄을 일찍 풀어준 것이다.
다만 목에 빨간색 목줄을 해 주었다.
이 고양이는 들 고양이가 아니라, 길들여진 집고양이란 뜻이다.
밖에 있을 때 누구나 이 고양이가 좋다면 가져가도 된다는 뜻이다.
미리 이별 준비를 한 것이다.
갑자기 이별이 찾아오면 마음이 아프기에 내 스스로 완충장치를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내 예상과 달리 집을 나가지 않았다.
나랑 같이 멀리까지 따라 나와 집을 못 찾을까 걱정했는데 잊지 않고 집을 찾아왔다.
그 때부터는 이 고양이는 집을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데리고 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낮선 사람들이 고양이 예쁘다고 만지려 하면 잽싸게 도망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저께...
고양이가 안 보인다.
늘 있던 자리에 고양이가 사라졌다.
누가 데려갔건, 고양이가 스스로 집을 나갔건 하여튼 고양이가 있어야 할 곳은 모두 찾아봐도 고양이가 없다.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건, 건강하게 잘 놀다가 나갔으면 마음이 덜 아플텐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면서 사라진 것이다.
혹시 교통사고로 잘못 되지 않았을까 온 동네를 찾아봤지만 교통사고는 아니다.
예상하기에 누군가가 데려갔다고 짐작할 뿐이다.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가 힘이 없어서 다른 아이나 어른들에게 잡힌 듯하다.
물론 예쁘고 귀엽고 목도리를 하고 있으니 집 잃은 고양이라 생각하고 데려갔겠지..
이렇게 예상할 뿐이다.
그렇다면 고양이에겐 잘 된 것이다.
주인 잘 만나서 방에서 자랄 수 있고 앞으로 다가오는 겨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늘 있던 그 자리,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나를 반기며 뛰어오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나를 보면 애교 떨며 뒹굴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집에 들어올 때면 자꾸 어디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게 된다.
나는 어느 정도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로 끝나지만 이별을 예상치 못 한사람들의 후유증은 대단하다.
거리에 지나다보면 가끔 전봇대나 담벼락에 애완견을 찾는 광고지를 발견할 수 있다.
강아지 사진과 함께 이름도 올리고 성별도 올리고 나이도 올리고, 강아지의 특징 사항도 올리고..
마지막엔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
애완견을 찾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지만 제 3자가 된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도 아니고 그 강아지가 뭐라고 후사까지 하면서 굳이 찾아야 하는지..
애완견이 필요하다면 다시 예쁜 강아지를 다시 구하는 방법이 더 쉬울 것 같은데 왜 저래야 할까?
정 이란, 새로 만들어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구하기도 쉽고, 경비도 훨씬 덜 먹히고, 더 예쁜 애완견을 구할 수 있는 선택권도 주어졌는데..
어느 때는 방송에 이런 내용이 흘러나왔다 1년을 찾았다나, 2년을 찾아다녔다나?
광고 전단지 까지 뿌려가며 뽀심아! 뽀심아! 하고 울먹이며 찾아다니는 여인이 있었다.
꼭 그렇게 찾아야만 했을까? 자식도 아닌데..
그들도 새로운 애완견을 다시 구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애완견 새로 구하는 것이 훨씬 쉽고, 경비도 싸게 먹힌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정이다.
그 강아지에게 주었던 정을 뗄 수 없기에 애완견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큰 것이 내 인생에서 빠져 나간 듯, 그 허탈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정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정을 끊고 다른 정을 얻으면 되지 않느냐,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쉽지 않다.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사랑, 연인의 사랑이 각각 다르듯,
정도 이렇게 분리 되어있기에 끊어진 정이 새로운 정으로 대신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 정을 애타게 찾고 있다.
애완동물과의 이별도 이렇게 아련한데 사람과 사람의 이별은 또 어떠할까?
가장 슬픈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 이별이 예고 되어있다면 미리 준비를 하였기에 아픔이 덜 하겠지만 예고 없는 이별은 큰 상처를 준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고,.
생자필멸, 회자정리!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죽고,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이 진리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진리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과 헤어진다고 해도 슬퍼할 이유 없다.
어차피 헤어질 운명인데, 그 시기가 좀 빨랐을 뿐이다.
이렇게 진리대로 생각으로만 하면 쉽다.
문제는 정이다.
]정도 같이 똑 끊어지면 좋은데 정은 죽음이나 이별처럼, 똑 끊어지지 않고 질기고 오래간다.
그 때문에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강으로 가고,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별이라는 아픔이 아리고 쓰리고, 그 후유증의 심각함을 알고 있다면...
진정으로 이별의 아픔을 알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면 안 된다.
상대방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도록 완충장치를 하고 헤어져야 된다.
상대방에게 정을 떼어놓고 떠나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다.
늙어 병들어 죽기 전에 가족들을 고생을 시키면 정을 뗀다고 얘기한다.
좋은 인상만 남기고 떠나면 가족들 고통이 심하기에 적당히 고생을 시키면 정이 떨어진다.
그러면 가족들도 이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별이 고통이 완충될 것이다.
예전에 내 아버지께서는 온 가족에게 적당히 정을 떼시고 떠나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너무 괴로웠다.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을 두고 병마와 싸우셨는데 처음엔 어서 낫기를 기도 했지만
후에는 승산 없는 싸움, 고통 받고 버티느니 차라리 얼른 떠나시라고 기도했다.
당시에 나는 아버지를 놔줄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가세요. 자꾸 아파하는 아버지 모습 보기가 괴로워요.
그만 가세요. 이렇게 간절히 난 요구했다.
내 기도를 들으셨는지 그 때 아버지는 떠나셨다.
아파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만 보다가 돌아가신 모습을 보니 아주 편안해 보였다.
아버지의 편히 누우신 모습을 보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크나큰 슬픔이지만 그래도 잘 된 것으로 생각하니 슬픈 마음은 상당한 완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만약 정이 듬뿍 있고 이별은 예상도 못 했는데 갑자기 떠나셨다고 예상해 보자.
그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가?
그랬다면 온 가족이 모두 공황상태로 빠졌을 것이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실제 이렇게 떠난 못된 분들도 꽤 많다.
나도 언젠가 죽음이 찾아오면 이렇게 이별하려고 했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병과 싸우며 고생하는 과정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을 때 되면 병마와 싸우는 과정 없이 그냥 휙! 떠나고 싶었다.
이것이 남아있는 사람들도 고생 안 시키고 좋은 방법이라 여겼다.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죽었다고 치자.
내 가족, 아내, 아들, 딸!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아마 통곡을 하고, 까무러치고 난리가 날 것이다.
몇 해 전,
사촌동생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자식들이고 제수씨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것을 기대하였으나 예상 밖이었다.
제수씨는 슬픔커녕 웃음도 간간히 목격할 수 있었다.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남편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울지 않고 웃음이라니, 왜 이렇게 됐을까?
내 사촌동생은 가족들을 무척 고생시켰다고 한다.
낫지도 않는데 기적을 바라며 수술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고 돈도 상당히 까먹고
온갖 고생을 다시키고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들은 정이 아주 똑, 떨어진 것이다.
가족들 모두 빨리 떠났으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떠났다.
그 때 라기 보다 너무 늦게 떠났다.
어차피 살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렇게 정을 완전히 떼어놓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 집을 나간 고양이도 그렇다.
우리 집 고양이도 정을 떼고 떠났다면 어땠을까?
여기저기 똥 싸 놓고 문을 발톱으로 박박 긁어 놓고 빨래 널면 내려서 흩어 놓고, 신발도 감추고, 온갖 미운 짓 하다가 집을 나갔다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테레비에 나온 뽀미의 주인아줌마도 그렇다.
그 강아지가 이렇게 말썽만 피우다 집을 나갔다면 전단지 돌리며 뽀미야, 뽀미야! 부르며 찾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헤어질 땐 적당히 정을 떼고 헤어지는 것,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나의 인생 마지막 목표는 바뀌었다.
나만을 위해 훌쩍 떠나는 것 보다 병과 싸워보고 적당히 가족들 정도 떼어놓고 떠나리라.
돈도 많이 까먹게 하고, 잠도 못 자게하고, 할 수 있다면 벽에 똥칠도 하고..
이 생활이 하루 이틀이 지나고 자꾸 길어지면 아내도 지겨워하고, 자식들도 지겨워하고..
당신 얼른 가요. 지겨워요.
아버지 얼른 가제요. 지겨워요.
그럴 때 난 떠날 것이다.
그러면 내 가족들은 이제 해방이라며 웃으면서 내 장례를 치를 것이다
나에 대한 이별의 후유증은 상당히 해소 됐을 것이다.
이별의 후유증을 쉽게 벗어 날 수 있기에 쉽게 평상심을 찾을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이별 방법인가.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드리는 말씀..
상대방이 싫어서 이별하고 싶으면 좋은 인상 남기고 떠나지 마세요.
상대방은 갑작스러운 이별의 고통으로 한강으로 향할지 몰라요.
이러시면 간접 살인입니다. 지옥가요~~
정은 떼어놓고 떠나세요.
술주정도 하고, 아무데나 예의 없이 오줌도 질질 싸고.ㅋ
미친놈처럼 행동해 보세요.
그럼 상대방은 정이 뚝 떨어져서.
"내가 저런 사람을 왜 사랑했지?"
하면서 절대 한강 안가요.ㅎ
그런데, 상대방이 일부러 하는 짓이란 걸 눈치 채면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