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장 하셨나요?

산으로 강으로 2014. 1. 15. 13:22

나는 반찬투정이나 하여튼... 먹는 것을 앞에 놓고 투정하는 법은 없다.

아무거나 있으면 그냥 먹는다.

30여 년은 마누라와 같이 살았지만 반찬투정 같은 거 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반찬이 많지 않아도 고추장 하나만 있으면 그냥 먹는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그냥 먹는다.

아마 조선간장 하나만 있어도, 아니지.. 소금 하나만 있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조선간장 하나로, 또는 소금을 반찬으로 해서 밥을 먹은 경험은 없다.

옛날 회사 다닐 때,

전무님께서 삼겹살 돼지고기를 사 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 출근 했는데 그 고기가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고기 꽃등심이였단다.

난 돼지고기로 먹었는데 소고기란다.

그런 줄 알았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또 어느 땐가,

친구부인이 산토끼 고기라고 해서 먹었는데 다음 달에 가니 그 고기가 고양이 고기였다는 고백에 나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이런 황당한 일은 또 있다.

난 먹는 것을 가리지 않으나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개는 어릴 때부터 클 때까지 항상 가까이 했고

또, 어머니께서 내게 개고기는 먹지 말라고 부탁을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나를 아는 친구들이 개고기를 염소고기라고 속여서 개고기를 염소고기 맛으로 먹은 적도 있다.

나의 감각 기능은 시각도 시원찮지만 코도 둔하고 미각도 둔하다.

그래서 인지 중국에나 다른 나라에 가도 그 나라 음식을 별 무리 없이 잘 먹는 편이다.

그렇다고 음식을 아주 안 가리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질린다.

집사람의 손맛은 대부분 내 입맛에 잘 맞는다.

그렇다고 맛있다는 표현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어쩌다 무심코, '청국장 맛이 참 좋네.."

이런 말을 했다가는 아침에도 청국장, 점심, 저녁.. 내일, 모래..

하여튼 맛없다고 하지 않으면 계속 청국장은 올라온다.

참다못해, '청국장 좀 그만먹자, 질리겠어..'

이래야 청국장과 이별 할 수 있다.

다른 반찬도 마찬가지, 오랜만에 올라온 씀바귀가 맛있다 표현하면 그 쓴 씀바귀를 질리도록 먹어 줘야 한다.

(이 글 울 마누라 보면 안 되는데,.ㅋㅋ)

서론 끝,

본론 시작..

2년 전.

어떤 지인 한분이 김장을 했다며 맛보기용으로 내게 주셨다.

김치! 하면 그 맛이 그 맛인 줄 알겠지만 아니다.

하시는 분의 손맛에 따라 다르다.

이 분은 김장을 하면서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며 굴, 새우젓, 명란젓...

하여튼 비싼 배를 사서 힘들게 갈아 넣으며 온갖 정성을 다 해서 만들었다 했는데..

맛은 별로였다. 아니지, 먹기가 좀...? 하여튼..?(주신 분의 성의가 있어서 표현은 그만해야겠다)

그런데, 그 김치를 맛만 보고 마누라는 질투 때문인지 다시는 그 김치에게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딸도 그랬고 아들은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엄마, 이 김치 맛이 왜 이래, 못 먹겠어 버려..!

나는 화를 벌컥 냈다.

"그럼 못써, 주신 분의 성의가 있는데.. 맛을 음미해 봐, 그런대로 맛있어..!"

하며 야단을 쳤다.

그러자 마누라가 아들 편을 들었다.

"그렇다면 가지고 오신 분이 다 드세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나 혼자 중얼거렸다.

'같은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그러면 쓰나?'

하여튼 그 김치가 매일 때 마다 올라오는데 한 달을 먹은 듯 하다.

그러다 어쩌다 그 지인 댁을 가게 되었다.

인사도 잊지 않았다.

'전에 주신 김치요,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던데요.'

인사말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늦가을이었나? 초겨울 이었나...?

하여튼 김장철..!

그 지인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어제 김장했는데요, 맛 좀 보시라고 싸 놨어요. 가져가세요.“

나는 생각도 안 해보고 순간적인 반응을 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식구끼리 드세요."

내 억양이 좀 그랬는데 지인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머뭇거리다 말이 이어졌다.

"작년에 맛있게 드셨다고 하셨는데 아니었나요?“

순간, 아차 싶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맛없었다는 표현이 말투에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해야 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구요. 너무 미안해서 그렇지요.

"미안하기는요, 제 맛을 인정해 주시니 고맙지요. 오세요.“

나는 감히 그 성의를 거부할 수 없었다.

"네, 그렇다면 체면불구 하겠습니다.“

"호호, 네네..괜찮습니다. 오세요."

아직도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인심에 감복하며 그 김장을 또 가져왔다.

전 번에는 맛 보기였지만 이번에는 식사용 한 통이다.

올해는 작년 맛과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했으나 전 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 변하지 않고 살아있다.

그 성의 있고, 맛있는 김장을 마누라 눈치 안 보고 혼자 다 먹어야 했다.

그 날이 어저께 이다.

아마 두 달을 더 먹은 듯하다. 햇수론 1년이 지났다.

큰 숙제를 마친 듯한 홀가분한 기분에 이 글을 쓴다.

그 보다 올 가을이 또 걱정된다.

올 가을에도 굳이 주신다면 박박 우기면서라도 반포기만 가져와야 하는데..

성의를 받아들이고 기분 나쁘지 않게 해야 하는데 묘안이 안 떠오른다.

음식은 만든 사람의 성의가 있다.

아무리 맛없다 해도 성의가 있기에 맛없다고 해서 사실대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드믄 것 같다.

식사 후에는 맛있건 없건 인사는 똑 같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개인사업으로 식당이 가장 하기 쉽고 가장 쉽게 문을 닫는지도 모르겠다.

음식 솜씨 좋다고 해서 식당을 시작했는데, 그리고 모두들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는데..

왜? 영어로 화이?? 손님이 없냐!! 이해가 안 되는 거다.

또, 어쩌다 오시는 손님도 맛있다고 했는데, 왜 안 오느냐? 이해가 안 된다.

식당에서는 맛없다고 솔직히 표현하는 사람들의 말은 뼈가 사무치게 들어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에라이~! 너 하나 없다고 문 닫을 줄 아냐?" 하며 재수 없다 하고 외면하며 미워한다.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는 빈말에 가려져 진실을 보지 못 하는 안타까움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 근처에 염소탕 집이 생겼는데 처음엔 양도 많고 해서 자주 이용했는데

어느 날 부터 갑자기 고기 양이 푹 줄고 시래기만 가득 하며 맛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렇다고 따지지 않았다.

계산할 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해 놓고 속으로는 '다시 오나 봐라.' 했다.

인생을 달리한 혼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맛이 없으면 없다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친구였다.

이 친구는 혼자 살면서도 김치 냉장고를 들여 놓았다.

이 친구는 성격이 좋아서 인지 김장철만 되면 김치 주겠다는 지인들이 많았다.

내가 손을 꼽아 봐도 열 명이 넘은 듯하다.

그 분들이 한통씩만 준다 해도 열 통이 된다.

그러니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을 만하다.

그 중에 내 마누라도 껴 있다.

미식가인 이 친구는 김치를 모두 접수 하면 하나씩 맛을 본다.

그리고 표현력도 거침이 없다.

"야, 동수야! 김장 맛을 모두 봤는데.. 니 마누라께 젤 맛없더라."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하기엔 집사람 김치는 그런대로 맛있고 상중하로 판단하자면 그래도 상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입맛은 아니었나보다.

난 급히 친구에게 경고했다.

"너, 그 얘기 울 마누라에게 사실대로 말 하면 절대 안 돼 다시는 김장을 안 주는 건 당연하고 분해서 울지도 몰라,.."

그러자 친구는 알았다는 듯 걱정 말라고 했다.

친구는 내 마누라를 보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제수씨 김장이 젤 맛있어요, 환상적이었습니다. 더 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빈 말하고 날 보며 씩, 웃었다.

이 친구가 살아있다면 내 마누라 김장과 내가 아는 지인의 김장맛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래도 내 마누라 김치가 젤 맛없다 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지인이 주는 김치 처리를 놓고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아무리 많이 줘도 이 친구 주면 되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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